와이드 앵글
미시마 vs. 전공투: 마지막 논쟁1969년 5월 13일, 천 명의 동경대 학생이 미시마 유키오를 기다리고 있다. 강당의 공기는 흥분과 긴장감으로 팽팽해져 티끌 같은 불씨 하나로도 폭발할 것만 같다. 동경대 급진파 운동권 학생들이 우익 민족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게 보낸 초청장은 사실상 결투 신청이었다. 과격파 학생들의 암살 기도에 대비하여 미시마의 개인 군대가 강당에 잠입해 온 것을 당시 학생들은 몰랐다.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었고, 미...
와이드 앵글
미싱타는 여자들: 전태일의 누이들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12살에서 16살의 소녀들이 평화시장에서 시다 일을 시작했다. 또래들이 학교를 다닐 때, 미싱을 돌리던 소녀들. 그들에겐 노동교실이 있었다. 전태일의 이름을 들었고, 근로기준법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1977년 9월 9일, “제2의 전태일은 여자다”를 외치며 노동교실을 폐쇄한 공권력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었다. 이제 중년이 된 소녀들이 그 시대를, 여성노동자의...
아시아영화의 창
바다의 시도시의 한 조각가가 자신의 소중한 작품들을 실은 컨테이너를 가지고 한적한 어촌 마을로 온다. 이곳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소득이 줄어들어 빚이 늘어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이다. 종교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라 공개된 장소에서는 술을 먹거나 이성과 대화하는 것조차 삼가야 하는 곳이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그의 작품 활동에 새로운 영감이 된다. 하지만 물고기가 하나도 잡...
와이드 앵글
바람 어디서 부는지극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인 윤정은 다큐멘터리 보충촬영 아르바이트 일을 맡아 강원도로 향한다. 윤정이 도착한 곳은 2019년 4월 대규모 산불로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린 고성. 그곳에서 윤정은 현지인들을 인터뷰하고 참담한 화재 현장과 마주하게 된다. (강소원)
한국영화의 오늘
반도전 세계에 K-좀비영화의 열풍을 일으켰던 <부산행>으로부터 4년 후 폐허가 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산행>이 KTX라는 제한된 상황에서 부산까지 탈출하는 직진의 서사였다면, <반도>는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는 이야기다. 군인 출신인 정석(강동원)은 한반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4년 뒤 죄책감에 그저 숨만 쉬고 살아가던 정석과 매형은...
와이드 앵글
반트럼프 투쟁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미국 사회의 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트럼프 투쟁>은 그 혼란의 구체적 사례를 더욱 생생하게 포착하기 위해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소속 변호사들의 ‘싸움’에 주목한다. 이들은 낙태 합법화, 트랜스젠더 인권, 어린이 난민 문제, 시민권 구성문제 ...
와이드 앵글
밤의 아이들아이 티를 벗지 못한 앳된 소년이 폭탄불발로 자살폭탄 테러에 실패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터지기만 했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길 바랬니?” “네, 언젠가 다시 돌아가 모두 죽이고, 자살할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소년의 입에서 태연히 흘러나온다. <밤의 아이들>의 주인공은 15세 미만의 다섯 소년병들이다. ISIS에 들어가 ‘분노의 폭탄’으로 길러진 이 아이들...
월드 시네마
베로니카유명 축구 선수의 아내 베로니카는 SNS 인플루언서를 꿈꾸고 있다. 팔로워 200만명을 돌파하면 유명 뷰티 브랜드의 홍보대사가 될 수 있고, 부부 관계도 다시 행복해질 것이고, 온종일 시끄럽게 울어대는 갓난아이도 사랑스러워질 것이고, 10년 전 죽은 딸 사건의 재조사도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베로니카는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떠오르는 신성 마리아나 디 지롤라모는 <에마>에 이어 ...
월드 시네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말리에서 온 불법 이민자 프란시스는 베를린에서 정직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마약상 하인홀드와의 만남은 그를 불행의 소용돌이로 이끈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사람에 관한 오디세이다. 나라, 사랑, 그리고 심지어 몸까지도. 파스빈더 감독의 걸작 이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영화화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부르한 쿠르바니 감독은 알프레드 되블린의 소설을 완벽하게 현대적으로 각색한다...
월드 시네마
붉은 땅간호사 누르는 아버지가 일하는 화학 공장으로 이직하게 된다. 회사는 노동자의 건강과 지역 사회의 안전을 무릅쓰고 독성 폐기물을 방출해 왔는데, 그녀는 진실 앞에서 갈등한다. <붉은 땅>은 진실과 사회 시스템이 충돌할 때 미디어로서 영화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다. 환경 보호는 자명한 명제지만, 가족이라는 끈과 직장이 제공하는 생존의 조건을 무시하기란 힘들다. 거기에 고용 안정과 지역경제, 정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