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의 결정적 순간들
유난히 찜통더위가 가시지 않던 여름도 끝자락인가 봅니다. 오늘은 부산에 강풍 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서서히 퇴근길 밤공기가 조금 시원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영화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이맘때면 항상 여러분들께 선정작을 소개하기 위한 긴 글을 준비하곤 했는데요, 올해는 ‘더 친절한’ 짧은 요약과 함께 더 많은 영화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프로이트의 환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이름은 ‘도라’이다. 도라는 환각과 기침, 목이 쉬고 우울한 증세를 보였으며 자살 충동이 있었고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꿈의 해석으로 실제 치료에 적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명명이 아니라 호명이다. 요양을 하기 위해 도착한 섬에서 현지인 부부에게 도라를 소개하는 장면에는 도라의 피부병이 정신과 연관되어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 끝나는 걸까.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남겨진 물건을 정리하고 나면 비로소 이별이 완성되는 걸까. 김시진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화곡사>는 망자를 배웅하는 화장터를 배경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화곡승화원을 지키던 이종갑 소장이 병
홍성민 | 한국 | 2026 | 110분 |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10.07 L4 13:40 / 10.08 L4 19:10 / 10.09 L7 10:20 / 10.14 L4 09:40 흠결 없는 것으로 평가받던 검사 김석규(정성일)는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다. 후보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은 1994년 ‘미금 방화 살인사건’에서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 형제가 모두 모였지만 다른 지역의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오시지 못하였다. 불현듯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이 생각나서 그것을 재생했다. 치매로 자식마저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 문득 정신이 드셨는지 아주 맑은 얼굴로 ’섬마을 선생님‘을 불러서 녹화해 놓은 터였다. 그 노래를 들으시면서 아버
영화 <아버지의 방>에서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토미(아오이 유우)는 죽은 아버지 유이치(잇세 오가타)가 생전에 보낸 열쇠를 우편으로 받는다. 사토미는 그 우편을 계기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영화가 다루는 주요한 소재 중에는 다도, 시가 있다. 이 두 소재의 공통점을 꼽자면 모두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도경은 대학 시절 함께 영화를 찍었던 민우를 우연히 만나 같은 동아리였던 현진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듣는다. 그 시절 찍은 기록 영상을 보던 도경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현진에 사로잡힌다. 이후 도경은 현진의 작품을 찾아 전국의 오래된 극장을 헤맨다. 도경은 왜 기어코 현진을, 그의 작품을 기억하려는 걸까? 영화 동아리 후배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보는 사
리윈찬 | 대만 | 2026년 | 112분 | 경쟁 10.12 B3 19:10 / 10.13 L10 18:10 / 10.14 L10 10:20 <평범하기 위하여>의 중심에는 겉보기에 무난한 4인 가족이 있다. 그들은 정상성으로부터 멀어 보이지도, 격정적인 불화를 겪는 것같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학생인 장남이 교통사고를
페드로 알모도바르 | 스페인 | 2026년 | 112분 | 아이콘 10.08 C6 09:00 / 10.09 C6 09:00 / 10.11 L9 16:40 <비터 크리스마스>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를 교차시키며 한 인물의 상실을 여러 겹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2004년, 극심한 편두통과 불안에 시달리던 엘사는 연인 보와
마르게리타 페라리 | 이탈리아 | 2025년 | 86분 | 플래시 포워드 10.8 C6 15:40 / 10.11 L6 16:00 / 10.14 B2 09:40 G8 정상회의 반대 시위로 도시 전체가 혼란에 휩싸인 2001년 7월의 제노바. 임신 8개월인 18세 니콜(가이아 라비나)은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시위대가 문을 두드리자 이들을
김성윤 | 한국 | 2026년 | 102분 |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10.13 BT 20:00 대를 잇는다는 것은 무엇을 물려받는다는 뜻일까. 이름과 재산만이 아니라 오래된 관습과 의무, 때로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의 방식 까지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세대유감>은 전통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와 그 전통에서 벗어나고
마리 크로이처 |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 2026년 | 115분 | 월드 시네마 10.07 L4 20:40 / 10.08 C1 12:40 / 10.13 C6 13:00 피아니스트 루시(레아 세두)는 번아웃에 시달리는 남편 필립(로렌츠 루프)과 아들 조니(말로 블랑셰)와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한다. 하지만 새집에서의 생활이
김지현 | 한국 | 2026년 | 110분 |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10.12 CGV센텀시티 6관 15:40 평생 소를 키워온 사람에게 소는 하루하루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30년 동안 의절한 채 이웃에서 각자의 목장을 운영해온 형 만수(류승룡)와 동생 병수(박해준) 는 누구보다 소를 잘 알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은
<멜트다운> : 아이의 눈높이만큼의 진실 마누엘라 마르텔리 감독의 <멜트다운>은 미스터리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끝내 답을 내놓지 않는다. 한나는 늦은 밤 이네스의 사촌 오빠와 함께 숙소를 나선다. 날이 밝아도 한나는 돌아오지 않고, 함께 나갔던 사촌 오빠는 이미 돌아와 있다. 그날 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겁쟁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공연을 하던 두 병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용기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202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두 주연 배우가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전작에서도 사회가 규정한 시선과 규범 속에서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추방하는가.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는 안전을 명분으로 통제와 격리를 시행한다. 그러나 보호의 실천이 언제나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주민들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이 예로부터 살아온 터전을 빼앗는 합법적 절차로 작동한다. 푸티퐁 아룬펭 감독의 <불타는 거인들>은 정체불명의 흰 연기
우리 사회가 최대한 올바르게 돌아가도록 설정된 윤리이념은 결국 사람이 그 가치를 체감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념이 모두를 끈끈하게 하나로 묶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쌓여가는 아비투스가 저마다 다른 판단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안녕과 만인의 행복을 위해 합의된 사회규율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어느 한 집단의
30년을 떠돈 이야기가 드디어 빛을 본다. <레이 건>은 <인크레더블>(2004)과 <라따뚜이>(2007)를 연출한 브래드 버드의 8년 만의 신작이자, 그가 터너 피처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구상해 온 30년 간의 드림 프로젝트다. 30년 동안 축적된 그의 공력은 휘발되지 않고, 작품의 밀도를 높여 주었다. SF와 네오 누아르를
세라 아놀드의 <짐승이 너무 많아>는 마치 눈을 가리고 질주하는 말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는 마을 숲길을 따라 난 도로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달리는 짐승들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짐승들의 움직임처럼 수사극으로 시작해 느닷없는 코미디가 되고, 날카로운 사회풍자는 예상치 못한 로맨스로 급격하게 방향을 튼다. 하나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는 바야흐로 2013년, TV 저녁 뉴스에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영화제 소식을, 개최 예정도 아니고 개막했다는 소식을, 티켓 카탈로그도 아니고 TV 뉴스로 접하고 있다는 충격. 내가 태어나 처음 TV로 소식을 접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이자, 내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영화제였다. 그리고 나는 그로부터 12년간 영화제를 찾지
손현록 감독의 <새>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집단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죽은 학생들과 같은 장소에 있던 혜정(심수빈)은 “새들이 있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왜 혜정은 추락사를 증언하면서 새를 언급하는 것일까? 새와 학생들의 죽음 사이에는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이 미스터리는 관객에게 당혹감을 주면서 호기심을 자아
아무도 없다던 혜미의 집,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웅성대고, 혜미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 좌불안석이다. 소음이 멈추지 않자 얼마 전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말까지 꺼내며 둘러댄다. 결국 친구들이 그 안을 보지 못할 정도로만 방문을 열고 그 소리의 원인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친다. 고양이의 정체가 화면에 드러나
삶에 방향이 있다면, 삶의 방향에서 잠시 놓여난 은주의 한달 살기를 정읍의 들녘이 전개한다. 논뷰 밭뷰가 선호되는 이유를 알 정도로 정읍 들녘의 풍경이 그 자체로 주인공이다. 새벽 안개 걷히는 미명이나 해거름에 붉게 타오르는 하늘, 인물들을 비추는 눈부신 역광,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의 광막함에서 무심하고 냉정한 자연의 위로가 전해진다. 가만가만 그 풍경을
보통 유서는 남겨진 사람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로 여겨진다.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글로 남기고, 남겨진 사람은 그 글을 통해 떠난 이의 죽음에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닌>은 부재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시선을 둔다. 영화는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이들의 시간을 따라가며 죽음 이후에도 계
분명 본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상이 있다. 흔히 '로스트 미디어'라 불리는 이런 영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노력으로 다시 발견되기도 한다. 영화 <극장에 두고 온 것들>은 그런 영상 한 편에서 시작한다. 영화평론가 도경은 영화제 모더레이터 일로 강릉을 찾았다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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