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프로그램
스틸 라이프<스틸 라이프>의 엔딩의 외줄타기. 이 장면은 탄광의 일자리를 희망 삼아 길을 나선 노동자들의 모습과 함께 등장한다. 자신의 터전이었던 곳, 그 아름답던 곳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려야 하는 자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탄광이다. 결국, 외줄타기는 그들이 품는 희망의 모습이다. 최상의 대가인 생존이 최악의 대가인 죽음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지만, 그렇다 해도 ...
경쟁
스파이 스타우주에서 몇 년을 보내고 막 지구에 도착한 생명공학자 아난디는 최근 지구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일바이브’ 감염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이유로, 산속 외딴 리조트의 격리시설로 보내진다. 풍경은 그림 같고 시설은 고급스럽지만, 아난디는 숨겨진 감시카메라, 지구로 다가오는 UFO, 그리고 이유 없이 잡혀가거나 죽어 나가는 마을 사람들 등 곳곳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최근 일바이브 팬데믹 때문에 세상을 떠난 아...
특별기획 프로그램
승리파시스트 정권의 잔혹함을 드러내기 위해 벨로키오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숨겨진 연인이자 그의 아들의 어머니였던 여성의 한 삶을 되짚는다. 그리고 절대 권력에 맞서 평생 진실을 추구했던 그녀에게 마침내 정의를 되찾아준다. <승리>에서 벨로키오는 남성 지배 구조를 파시즘과 동일 선상에 놓는다. 오페라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미장센 속에서 젊은 무솔리니는 명암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배우의 얼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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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트아랍어로 ‘시라트(Sirat)’는 최후의 심판 날, 모든 사람이 건너야 하는 지옥 위의 다리를 뜻한다. 올리베르 라시의 로드무비 <시라트>는 ‘영화적 트립(trip)’이다. 험준한 산맥과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풍경 속에서, 모로코가 마치 미지의 행성처럼 묘사되는 환각적인 여행이다. <시라트>는 강렬한 음악적 체험이기도 하다. 영화는 거대한 ‘레이브 파티’를 조직하는 공동체에 주목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쾅쾅...
와이드 앵글
시적허용시 수업을 같이 듣는 주원과 소윤이 옥상에 앉아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해가 지는 것이 싫은 주원과 그의 시작(詩作)을 도와야 하는 소윤. 소윤은 그의 귀에 ‘자전과 공전을 멈춰’라고 속삭인다. 자연의 섭리를 호오(好惡)로 말하던 소년이 마침내 밤의 시를 허용하게 된다. (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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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에이전트동시대 가장 중요한 남미 영화감독으로 꼽을 수 있는 브라질의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신작이다. 1977년 브라질의 군사 독재 시절, 고향 헤시피로 돌아온 마르셀로는 실종된 어머니의 기록을 찾고 아들과 재회하려 하지만 도시는 감시와 망각의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감독의 고향이자 모든 전작들의 배경이기도 한 헤시피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공간적, 정서적인 면에서 <유령들의 초상>(2023)과 연결되고, 개인의...
플래시 포워드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1980년대 칠레의 황량한 광산 마을. 노동자들의 유일한 휴식처인 작은 바에는 게이와 트랜스젠더 예술가들이 무대에 오른다. 어느 날, 눈빛만으로 전염된다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기 시작하고, 이들은 곧 공포와 혐오의 표적이 된다. 이 황량한 지역은 독재에 억눌리고 에이즈에 대한 정보와 예방이 부족했던 당시의 칠레를 상징한다. 디에고 세스페데스 감독은 사회적?정치적 비극, 뮤지컬, 웨스턴, 동화 등의 여러 장르...
월드 시네마
신은 돕지 않는다<날 좀 내버려 둬>(2016)로 베니스영화제 등에 초대됐던 유시치가 9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다. 낯선 방문자의 낯선 여정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페루 여성 테레사다. 크로아티아 산간마을을 찾아온 그는 이민 간 남자의 부인이라고 말한다. 극의 두 주요 인물은 신성에 의지하는데, 그들의 그르침은 신이 아닌 인간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삶의 고단함은 남성에 기인한다. 전작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는 ...
경쟁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저 유명한 첫 문장을 빌려오자면 불행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꼴이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모든 퍼즐이 완벽하게 충족된 상태인 데 반해 불행은 어떤 퍼즐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바로 이 상실과 결핍...
아시아영화의 창
쓸모 있는 귀신<쓸모 있는 귀신>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처럼 익숙함과 낯섦이 뒤섞인 작품이다. 장르조차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독창적이지만 관객을 놀라게 해 줄 흡입력이 있는 데다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젊은 여자 귀신 낫(다위까 호네)은 죽음을 거부한 채 진공청소기에 빙의하여 남편 마치(모스트)를 찾아간다. 그러나 남편의 가족은 두 사람의 재결합을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