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오늘
승리호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화제작 중 하나. 조성희 감독은 SF 장르의 공식을 일부 도입하되 자신만의 판타지를 완성해 냈고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다시 한번 조성했다. 예컨대 SF 영화의 중핵이 되는 상실감이 이 영화의 중추를 이루고는 있지만, 보통 예상하는 부유함과 고립감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일에 한해서는 전문가들이지만 어딘가 나사 하나씩 풀린 인물들이 또 하나의 지역구와 같은 우주에 대거 등장해 제대로 놀고 있...
아시아영화의 창
시간의 세례한 여성의 희생을 현대사에 덧씌워 풀어낸 짜끄라완 닌탐롱 감독의 <시간의 세례>는 ′맴′이라는 여성의 젊은 시절과 노년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1960년대 젊은 날의 맴은 두 남자로부터 구애를 받는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결국 냉혈하고 야심찬 군 장교와 결혼하게 되는 그녀.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서슬 퍼렇던 남편은 온종일 침상에 누워 누군가의 간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본인도 늙고 많은...
뉴 커런츠
시간의 집6월 21일 오전 6시.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진료를 하던 의사가 아침 조깅 중 온몸을 방호복으로 감싼 한 여인을 만난다. 집에 환자가 있다는 여인의 간청을 외면한 채 돌아가던 의사는 뒤통수를 가격당해 쓰러지고, 정신을 차려 보니 서로를 '마모니'라고 부르는 세 여성이 사는 집에 갇혀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인물이 같은 행동과 대사를 반복하는 이곳은 시간과 공간의 늪이다....
와이드 앵글
시인들의 창누군가의 말대로,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볼 만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그저 손가락을 움직일 뿐인데 그렇게 밤을 새우는 일을 누가 지켜보겠는가. <시인들의 창>은 그런 작업 과정을 인위적인 무엇도 더하지 않은 담백한 시선으로, 그러나 무언가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작가의 작업을 보지만 그가 지금 무얼 쓰고 있는지 어떤 위기에 봉착했는...
아시아영화의 창
시험샤우캇 아민 코르키는 <킥 오프>(2009)로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받은 쿠르드 출신 감독이다. <돌에 새긴 기억>(2014) 이후 오랜만에 연출한 신작 <시험>은 카를로비바리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보수적 남편과 결혼해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사는 여자가 있다. 여동생만은 자신처럼 불행한 결혼을 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그녀가 꼭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
아이콘
신의 손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마코드>(1973)를 반추하게 만드는 파올로 소렌티노의 신작 <신의 손>은 그의 전작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축구의 전설 마라도나가 SSC 나폴리단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풍문으로 도시 전체는 예수의 강림이라도 기다리는 듯 술렁댄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파비에토는 평범한 집안의 둘째로,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인 동시에 또래들처럼 축구광이기도 하다. 하지만 ...
뉴 커런츠
실종<도쿄!>(2008)와 <마더>(2009)에서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을 했던 가타야마 신조의 두 번째 영화로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스릴러다. 탁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연쇄살인범을 봤다며 그를 신고해 포상금을 타겠다는 의욕을 보이지만, 다음 날 사라져버린다. 딸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그와 같은 이름을 쓰...
와이드 앵글
심부름어린 남매 주희와 성준이 엄마의 심부름으로 이곳저곳을 다닌다. 문방구에서 시작해 슈퍼와 철물점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작은 여정에 차츰 싸한 기운이 더해진다. 수상쩍은 구매 리스트, 내내 투닥대는 남매, 거대한 이야기를 품은 최소의 플롯. (강소원)
특별기획 프로그램
심플 라이프성공한 영화 프로듀서인 로저는 늘 소탈한 차림새이지만 입맛만은 유독 까다롭다. 태어날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온 아타오 덕분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60년 넘도록 로저네 집안 가사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아타오는 로저와 형제들에게 양어머니 같은 존재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타오가 더 이상 로저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은퇴를 선언하고 요양병원에 들어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로저는 살뜰하게 아타오를 챙...
한국영화의 오늘
싱크홀재난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재난 영화 속 생존을 위해 내달리는 인물들의 끈끈한 드라마는 사회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싱크홀>은 한국형 재난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서울살이 11년 만에 어렵게 내 집 장만에 성공한 동원(김성균)은 이사 첫날부터 이웃 주민 만수(차승원)와 티격태격 다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 한복판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 빌라가 통째로 땅속으로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