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앵글
좋은 빛, 좋은 공기이 영화의 제목은 묘하게 역설적이다. 한국 현대사를 향한 끈질긴 응시와 예술적 자의식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민하게 작업해 온 임흥순 감독은, 이번엔 광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투쟁과 탄압의 역사가 만나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두 도시에선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수많은 이들이 학살되었고,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실종처리 되었으며, 또 수많은 이들이 암흑의 역사가 안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
한국영화의 오늘
좋은 사람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좋은 사람>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도덕군자를 가리키는 정의의 말이 아니라, 과연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냐고 날카롭게 묻는 파괴적 질문처럼 느껴지게 된다. 학생들에게 자애로운 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서 도난사건이 벌어진다. 정황상 학생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경석도 세익에게 자술을 유도하지만 세익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
월드 시네마
주둥이들쿠엔틴 듀피유 감독의 영화는 기발하다. 타이어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광란의 타이어, 2010) 주인공이 쉬에드 가죽 재킷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디어스킨, 2019). 이번에는 초대형 파리다.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는 단짝 쟝갑과 마누는 어느 날, 자동차 트렁크에서 거대한 파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원대한 꿈을 꾼다. 파리를 훈련해 드론처럼 이용해서 돈을 벌자는 계획이다. 쿠엔틴 듀피유 작품들의 엉뚱한 시발...
와이드 앵글
죽여주는 남자소심한 남학생은 부모님께 친구네집에서 자고온다고 거짓말하고 데이팅앱으로 약속한 남자를 기다린다. 거리엔 남성 매춘부들이 죽어있지만 아무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다. (박성호)
월드 시네마
죽음의 종소리가리스멘디 농가에서 묻혀있던 해골이 발견된다. 부부는 아들 네스토르를 불러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골이 감쪽같이 사라진 후다. 바스크 지방의 한 농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스릴러 <죽음의 종소리>에서 유골의 발견은 한 가족의 오래된 상처와 어두운 비밀을 끄집어낸다. 네스토르의 쌍둥이 형제 에이토르가 오래전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와이드 앵글
지금, 홍콩작년 4월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하며 불거진 홍콩송환법 사태는 장기간 계속되며 세계의 근심어린 시선을 끌었다. 이 법안은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 반체제 인사들까지 강제 송환할 수 있는 권한을 내포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맞서 시위대도 과격해지며 사태는 폭력적으로 번져갔다. 법안은 결국 9월 4일 철회되었지만, 역사와 경제 불황과 세대 갈등과 반...
한국영화의 오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인물들은 돈 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천국과 지옥을 살아간다. 다수의 인물들이 돈 가방을 서로 낚아채고 가로채기를 반복하며 아귀다툼의 형국을 만들어 낼 때 혹은 그 돈 가방이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며 인물들의 사정과 사연을 길어 낼 때, ‘돈 가방’이란 끝내 인간의 쾌락이나 행복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악하고 무서운 신이 되어서 인물들을 더 깊은 모순과 수렁으로 빠뜨린...
아시아영화의 창
질주상하이의 필름스쿨에 다니면서 영화 음향기사로 일하는 쿤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낡은 지프차를 구입했다. 운전면허도 따기 전이었지만 차부터 덜컥 사게 된 것은 그 차가 내몽고 평원을 질주하던 녀석이라는 딜러의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한편 쿤의 여자친구 쯔는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홍콩에 갈 돈을 모으기 위해 레이싱 모델로 일한다. 초원을 달리고 싶은 쿤과 디즈니랜드를 동경하는 쯔, 홍상수와 왕가위의 ‘예...
플래시 포워드
짐승들의 마을콘스탄스는 약혼자와 파산 직전인 아버지의 농장 경영을 적극 돕는다. 농장의 구식 경영시스템을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통과 시키려면 마을의 유지인 실뱅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무실로 찾아온 그녀를 성폭행한다. 콘스탄스는 그날의 일을 감추려고 하지만 자신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오는 실뱅에 분노한다. 나엘 마랑뎅의 두 번째 장편 <짐승들의 마을>은 묵직하다. 감독은 쇠락해가는 프랑스 농가의...
한국영화의 오늘
청산, 유수빚쟁이들에게 쫓기며 근근이 자가용 택시 영업을 하며 살아가는 젊은 남자(김진엽).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방금 뛰쳐나온 젊은 여자(이설). 생면부지 관계인 두 사람의 우연한 동행의 여정이 <청산, 유수>의 내용이다. <방문자>로 주목을 모은 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 <컴,투게더>로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온 완강하고도 우직한 신동일 감독은 전작들의 장점을 제각각 확장하되, 동시에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