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한 과학자가 일기를 내레이션 한다. 인구포화에 직면한 미래의 지구에서 사람들은 ‘메트로폴리’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낮에만 활동하는 부류와 밤에만 활동하는 부류로 나뉘어 살아간다. 낮에 속하는 여의사 사라는 실종된 딸이 밤의 시민이 된 것을 알게 되지만 모녀가 만날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과학기술의 남용이 야기할 수 있는 인간성 상실을 경고하는 멕시코산 휴먼 SF. 메트로폴리의 음울한 색채는 영화 후반부에서 그곳을 탈출하는 인물들이 마주하게 되는 탁 트인 자연경관과 극적으로 대비됨으로써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억누르고 통제하려 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사랑, 가족애에 대한 감독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급 할리우드산 SF의 시각적 만족은 찾아볼 수 없지만 뚜렷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최대한 발동시킨 개성이 돋보이며, 특히 절제된 대사와 미니멀리즘적 의상, 독특한 발상을 무기로 고비용의 장르에 도전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되는 멕시코 신예감독의 데뷔작. (이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