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탄생, 죽음의 자의성을, 계몽의 변증법을 극화한 네 개의 에피소드 모음. 각 에피소드는 특정 중심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폭력적 성향을 지닌 알렉스는 내전에 직면한 예전의 유고슬라비아와 관련된 실험에 참여한다. 사라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외로움으로부터 탈피하려 애쓴다. 바스티안은 죽고자 작심한 아버지의 결심을 꺾어야 하며, 안나는 어느 외국 사내와 춤을 춘다. 위 네 에피소드는 독립돼 있으면서도 느슨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것은 극적으로 얽히진 않아도 스쳐 지나가듯 맺어지는 관계에 의해 확보된다. 그 관계는 마치 4계의 그것과 흡사하다. 다르면서도 연관된 그 무엇. 더러는 드라마틱하고 더러는 서정적이며 더러는 성찰적인 에피소드들은 기대 이상의 긴장감을 안겨주며 끝까지 달린다. 에피소드마다 더러는 독일영화다운 관념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더러는 독일 영화답지 않은 감각적 세련미를 뽐낸다. 언뜻 낯설게 비치는 흑백 이미지는 흑백의 화면이라기보다는 모노톤 적 색채영화 느낌을 전하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아직은 낯선 배우들과 조우하는 맛도 작지는 않다. (전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