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학원가에 빛나는 청춘의 생을 묻은 사례에 관한 영화들은 한국독립장단편에서 적잖이 발견된다. 노량진이 첨예한 현실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 은미가 살고 있다. 은미도 노량진 학원가의 공무원 수험생인데 그녀의 준비가 순조로운 것 같진 않다. 과묵하고 다소 힘겨워 보이는 그녀는 종종 가벼운 연애와 섹스로 그나마도 생활의 숨통을 트이고 있다. 그즈음 공부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즈음 이 남자에 대한 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은미>의 영화적 구조는 간결하고도 반복적인데, 그 간결성과 반복성은 흠이 아니라, 은미라는 인물과 그녀의 삶에 배인 황폐함과 위태로움과 외로움을 배가시키는 최적의 미학이 된다. <은미>는 막막한 폐쇄회로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 관한 지독한 보고서다.(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