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채국에서 근무하는 정혜는 무심하고 이상한 여자다. 아주 약간 이상하기 때문에 아무도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유난히 수줍어하는 소설가 남자가 우체국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정혜의 표정 없던 얼굴에 조금씩 밝은 기운이 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녀가 얼마 전 아무 말 없이 신혼 첫날밤에 도망쳐온 이유, 그리고 어떤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전 장면이 핸드헬드로 촬영된 이 영화는 겉보기와는 달리 유년기의 상처가 지닌 파괴적 영향을 고발하는 사회성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갖가지 상처의 기억을 억누른 채 그저 살아 있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서글픈 초상이다. 단 한 번의 격정도 없는 조용하고 굴곡 없는 일상을 무심하게 뒤쫓으며, 손짓과 표정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마음의 풍경을 단숨에 드러내는 야심의 영화. (허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