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만을 찾아다니며 숙식을 해결하는 남자가 있다. 마른 화분에 물 주고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게 그가 숙박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비어 있는 줄 알고 찾아든 집에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며 식물처럼 사는 여인이 숨어 있다. 여인은 남자를 따라나서지만 결국 남편에게 붙잡혀오고 남자는 감옥에 갇힌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기술을 익힌 남자가 그녀를 다시 찾아온다. 오직 여인만 남자를 볼 수 있으며, 두 남녀는 이제 서로 사랑을 표현한다. 집은 채워져야 하고 빈 집은 채워지길 기다리는 불완전한 공간이며 곧 세상의 틈이다. 세상의 틈에서 살아가는 남자는 언어를 쓰지 않으므로 그는 언어의 틈에서 산다. 그 틈에서 살던 남자는 자신의 육신을 감춤으로써 마침내 존재의 틈에 이른다. 그 완전한 틈의 영역에서 비로소 온전한 삶이 시작되고 사랑이 싹을 틔운다. 최소의 대사, 최소의 기교만으로 이 영화는 소유와 무소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발언와 묵언, 영혼과 물질의 대항에 관한 심원한 알레고리에 이른다. <빈 집>은 명백히 김기덕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