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은 주차단속원인 다림을 알게 된다. 정원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아버지에게 비디오와 사진현상기 작동법의 메모를 남기고, 자신의 조상화를 찍는 등 주변을 정리하기에 분주하다. 다림은 정원을 만나지 못한 채 전근을 가고만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 겨울이 오고, 다림은 오랜만에 차은 사진관 앞에서 자신의 흑백사진을 발견한다. 정원이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그것은 한 통의 편지만큼이나 선명하고도 순수하다. 더군다나 죽음이라는 문제를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표면을 쫓는 객관성은 우리에게 실존의 놀라운 무게를 감당케 한다. 다림은 끝내 정원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원은 세상에서 마지막 사랑을 보여준 이에게 감사를 보낸다. 사진의 이미지는 바로 감사하는 존재물 자체이자 실존의 무게가 되며 영화 또한 존재론적 이미지에 접근한다. ‘따뜻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따뜻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정원의 주변을 다룸으로써 죽음이라는 문제를 우회하고, 한 인간의 추억과 시간을 보여줌으로써 죽음 속에서 다시 삶을 바라본다. 마치 미로처럼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해야 하는 것들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묻듯이. (이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