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한지윤이 쓴 소설(에이린 창이 현대 중국어로 번역했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허우의 새 영화는 문학의 각색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언어,예절,도덕률을 지녔던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한 성찰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샹하이의 영국조차 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유곽(기생집)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통치하는 샹하이의 다른 구역에서는 매음굴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청왕조의 관리들에게 조차지역은 매력적인 곳이였다. 이들 대부분은 기혼자였으므로 (중매를 통한 조혼은 여전히 규범이였다) 그들은 섹스보다는 구애와 로맨스가 주는 짜릿함 때문에 기생들의 단골이 되었다. 극도로 절제된 형식을 견지하면서 (단 한씬을 제외하면 모든 씬은 원 테이크로 촬영되었다) 허우는 두 줄기의 이야기로 영화를 구성한다. 첫째는 기생 크림슨이 다른 정부와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관료 왕(토니 륭)이 그녀와 관계를 끊은 이야기이고 둘째는 동반자살미수라는 소문을 숨기려 하는 난봉꾼과 냉소적인 기생의 이야기이다. 놀랄만큼 관능적인 이 영화는 관객의 시간감각을 절묘하게 교란시킨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반면 내러티브는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하고 있으며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버리는지를 말해줌으로써 놀라움을 안겨 주고 있다. (토니 레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