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이었던 첫사랑, 백혈병으로 인한 이별, 17년 전 약속을 지키려는 홀로 남은 자. 아날로그적 사랑의 순수함을 보여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던 유키사다 이사오가 다시 한번 비극적 사랑에 도전했다. 메이지 유신 시절, 귀족 집안의 자제인 키요아키와 사토코는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이다. 커갈수록 사토코는 키요아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표현하지만 20대 청년에게 아직 사랑은 낯선 단어,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냉랭한 기운과 가시 돋친 말로 그녀를 밀쳐낼 뿐이다. 형식적인 치장을 걷어낸 단순하고 깔끔하게 보여지는 이미지의 이면에 흐르는 이들의 정열적인 사랑을 불멸의 그것으로 승화시켜 주는 계기는 왕자와 사토코의 약혼이다. 양가 집안과 심지어 황실이라는 큰 장애를 둔 둘의 사랑은 의심할 바 없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의 전형적인 컨벤션을 따르고 있는 [봄의 눈]은 새로울 것 없는 멜로드라마지만 지고 지순한 순수로 찌든 사랑을 정화하고 싶다면, 더불어 눈 내리는 창 밖을 보며 마차 안에서 극적인 첫 키스를 하는 등의 말랑한 감각을 원한다면 즐겁게 떠날 수 있는 여행이다. 손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