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베트남극영화사의 시작이 1959년인 것도, 세계에서 베트남영화의 존재가 희미했던 것도, 백년도 넘게 계속된 프랑스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 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베트남영화예술의 시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은 마침내 종식되고, 그 후 사회주의 이념아래 국가재건이라는 험난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영화도 예술로서의 본래 입지를 찾는 신호가 나타나게 된다. 당낫민 감독의 [강위의 여자]는 1987년 불어닥친 자유화와 사회변화의 필요성을 앞질러 표현함으로써, 전쟁 후 10년동안 태동한 새로운 베트남영화의 팡파레를 울렸다. 단순한 멜로드라마를 복합적 가치를 가진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조형적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 시적 서정성은, 베트남현대사라는 자칫 도식적 주제의 위험을 미묘하게 압도한다. 즉 이념적 검열의 한계안에서도 베트남 현대사를 예술작품으로 그려낸 [강위의 여자]는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는 희귀한 보물인 것이다. [강위의 여자]는 미군경비대에게 쫒기던 투의 목숨을 구해내고 그를 사랑하게 된 아름다운 뉴옛의 이야기이다. 뉴옛은 창녀로 전락하고 해방후 갱생수용소를 거치게 되지만 투를 향한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지도층관료가 되어 안정되고 권위있는 삶을 누리는 투는 그녀에게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린 채 그녀를 외면한다. 전쟁 때문에 희생되고 멸시당하는 보잘것없는 여인의 수난은 투가 지도층관료세력이 된 후 변질되며 보여주는 인간성의 박탈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역사의 격랑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의 고뇌와 외로움, 투를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유유히 흐르는 강을 거슬러 노를 젓는 모습 등, 여주인공의 고고한 아름다움이 특히 강조된다. 뉴옛은 역사의 진정한 히로인으로 그려진 반면, 권력자 투는 진실의 검열자이다. [강위의 여자]는 혁명세력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비판함으로써 해방 10년후의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념적 한계에서나마 시대적 변화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과감한 노출장면과 인간성 회복의 주제는 사회주의아래에서도 자유화의 필연적 도래를 내포하며, 이 휴머니즘은 이후 감독의 다른 작품에 공통분모처럼 표현된다. [망향 Nostalgia For Countryland] (1995)과 [구아바의 계절 The Season fo Guavas] (2000) 등, 이상적 가치에 대한 시적이고 향수어린 찬미를 통해 반복되어 드러나는 휴머니즘의 얼굴은 감독의 변함없는 미학적 탐구로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명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