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프랑스 대혁명 직후 공포정치 시기에 파이프를 입에 문 귀족이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려나가는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조지아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한창인 2000년대로 이동한 뒤 민간인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군인들과 그들에게 강박적으로 세례를 주는 가슴팍에 문신을 새긴 이상한 사제를 보여준다. 이어서 현대 파리로 옮겨온 카메라는 한 건물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건물 수위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상당한 교양을 갖춘 수위가 고서를 수집하기 위해 바주카포를 파는 동안, 집안의 유산이 국가에 의해 몰수당할 처지에 놓인 남자, 돌무더기로 피난처를 쌓아올리는 부랑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소매치기들, 스팀롤러에 의해 압사당하는 노숙자 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이 파리 건물을 중심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가 조용히 관찰한다. 드라마 창출보다는 화면 속을 이리저리 오가는 인물들의 파편화된 삶을 전시함으로써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을 선호해온 이오셀리아니의 이전 영화들의 요소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으로, 혼돈 속에서도 꿈, 우정,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