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아기와 나> 순영이 찾기

By 문정임

누구나 힘들다. 각자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내는 거다. 그러나,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온 도일은 나만 힘든 것 같다. 카메라는 내내 주인공 도일을 따라가며 도일의 어두운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좁은 집에선 아픈 엄마와 결혼식도 못 올리고 살고있는 순영, 갓난 아들 예준이가 내 제대만 기다리고 있다. 헬스장 트레이너 자리를 확답했던 지인은 학벌과 자격증을 내세워 허드렛일을 제안한다. 나를 뭘로 보고!

요즘 졸업유예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도일의 심정이 딱 그 심정이다. 그나마 군대있을 땐 핑계라도 있지. 오죽하면 제대안하고 계속 군대에 남아 있고 싶다. 군대는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계급이 올라가고 제대를 하는데 사회에선 내가 밥그릇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성실함이 익숙지 않은 도일은 걱정이 큰 것이다.

 

순영과 엄마 사이가 곰살 맞은 건 다행이다. 엄마 옆에 붙어 앉아 계속 까먹는 스마트폰 사용방법을 짜증내지 않고 가르쳐주고, 흰머리 염색도 도와준다. 순영은 딸보다 더 딸 같고 엄마도 순영을 마음으로 위하며 지낸다. 마트에서 일을 하는 순영은 철부지가장 도일의 짜증도 잘받아주고 예준이도 잘 키우고 있어 어쩌면 도일이 취직만 하면 아무문제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도일은 예준 진료차 간 소아과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예준의 혈액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사고뭉치 도일이 신기하게 급 똑똑해지는 순간이며 아침드라마에서 익숙한 갈등이다. 도일은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 고민을 하지만 갈등은 이후 더 깊어진다. 순영이 가족들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당당하지 못한 진실을 숨기고 있으니 순영은 가족들에게 더 열심히 대했을 것이다. 들킬까 불안했을 비밀이 도일과 예준 둘만을 병원에 보내놓고 극대화 됐을 것이고 도일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상황을 읽었나 보다.

 

도일의 순영 찾기가 시작된다. 제목을 <순영이 찾기> 쯤으로 바꿔도 좋을 듯하다.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도일은 정공법으로 들이대고 주변과 충돌을 만들어 간다. 친구들은 다시 안볼 것처럼 순영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그런 순영과 함께 사는 도일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따윈 안중에 없다. 엄마는 숨겨왔던 폐암 발병으로 입원하고, 도일은 그토록 하기싫던 청소일을 예준이를 옆에 끼고라도 하면서 수시로 순영이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찾아서 어쩌겠다는 건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찾는다. 순영의 남동생을 만나 엄마의 부재와 폭력아빠 밑에서 결핍덩어리였던 순영의 어린 시절을 확인하며 순영 역시 만만치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되지만 거기서 연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도움을 받을 시스템은 전무하고 혼자 예준이 육아와 엄마간병과 생계를 해결하기엔 답이 안나오는 상황, 결국 예준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만 이내 달려가 예준이를 안고 돌아온다. 다시 예준을 품에 안은 도일이 찾은 엄마병원. 병원마당에서 무심히 지나가던 도일이 돌아보고 그곳엔 순영이 앉아 있다. 겁나서 그랬다는 순영의 어깨를 감싸안은 도일은 세 가족이 나란히 엄마병실에 들어가 앉는다.

여기까지 아주 익숙하다. 도일이 아기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성장영화라고 하면 밥숟가락 얹는 것 같고 우리 사회의 청년문제를 잘 버무려놓은 것 같다. 본격적으로 삶과 직면하게될 부부와 <아기와 나>로 장편 데뷔한 손태겸 감독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