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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진파>-하나 혹은 두 개의 이야기

By 김석화

                                                                                                     하나 혹은 두 개의 이야기

                                                                                                                                                                                                                     김석화

  <진파>는 티벳 출신의 중국 감독인 페마 체덴이 연출한 작품이다. 전작 <타를로>(2015)와 마찬가지로 티벳을 배경으로 현지어를 사용하여 촬영되었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만들었다. <타를로>는 티벳인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타를로를 내세우는 반면 <진파>진파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을 통해 티벳인의 정체성과 일상, 욕망등을 다룬다. 페마 체덴의 영화는 촘촘한 사건과 대사보다는 공간과 인물이 화면을 채운다. 또한 내러티브를 쌓아 만드는 것이 아닌 그것을 천천히 지우며 만들어진다.

  시작 후 십여 분이 지나도록 영화는 아무런 말을 걸지 않는다. 황량하고 텅빈 티벳 고원과 그 사이로 형태를 숨긴 채 뻗어 있는 길, 짙은 압력을 지닌 듯한 흐린 하늘과 바람. 그리고 시간에 삭아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트럭과 운전사 한 명. 배경을 지운 듯한 빈 배경과 여백으로 가득한 풍경이 영화 초반을 진득하게 채우고 있다.

  인물의 사소한 동작 외에 정적인 화면을 유일하게 가로지르는 것은 그가 듣고 있는 음악이다. 칸초네 <오 나의 태양>. 주인공이 테이프를 찾아 꽂고 들으며 따라 부르기까지 하는 노래다. 지나치게 밝은 이국의 음악은 적막한 고원 지대와 대비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티벳어로 불리는 이 노래는 트럭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 고원의 흐린 하늘 아래를 흐르고, 이질적이지만 따뜻하게 영화를 감싼다. 하나뿐인 딸을 생각하며 듣는다는 이 음악으로 인해 건조하고 추운 공간에 약간의 빛이 새어든다. 영화 후반부까지 등장하는 음악이 고요한 정서를 지닌 영화를 통과하며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주인공이 길을 걸어가는 한 남자를 태우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죽재킷에 선글라스를 낀 주인공과 달리 나중에 등장한 이 인물은 허름한 몰골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 길이라며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있다. 그리고 둘의 이름이 같다. ‘진파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남자. 다른 진파가 차에 타기 전에 진파의 트럭에 치여 죽은 양.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 또 다른 진파. 그리고 죽은 양의 영혼을 달래고자 하는 주인공 진파의 예. 사라진 진파를 찾기 위해 길을 우회하는 운전사 진파. 가야 할 길로 다시 돌아오는 운전사 진파의 여정을 보면, 영화는 티벳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같다.

  우회한 장소를 벗어나 트럭이 다시 길에 들어섰을 때 진파에게 변화된 것은 없다. 그러니 나중에 오고 사라지고 없는 진파라는 인물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와이드 화면비를 선택하지 않았다. 두 인물이 트럭에 앉아, 얼굴 반틈이 잘린 채 양쪽에 걸쳐 있는 숏이 그걸 말해줄 수 있을까. 여정 속 인물일지 아니면 진파의 심리적 인물일지.

  두 개의 죽음, 같은 이름의 두 인물. 그것을 감싸는 애써 밝은 노래. 이것들이 영화를 관통한다. 진파를 통해 상실의 여정 위에 있는 티벳에 우리는 얼마만큼 다가갈 수 있을까. 감독이 <타를로>를 통해 티벳인에게 다가온 현대적인 시간에 의문을 품었다면 <진파>는 티벳인의 변화하는 내면에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 혹은 두 개의 이야기를 품은 진파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