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영춘각의 풍파> 자영업자의 애환을 담은 B급 무협영화

By 김유리

   원-명 교체기에 영춘각이란 객잔에서 맞닥뜨리게 된 원의 하남왕 일행과 반란군 첩자들의 충돌을 그린 영화 <영춘각의 풍파>는 무협영화의 장르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 인물들의 절반 이상이 여성, 그것도 무술에 능한 여성이란 점은 훌륭한 관람 포인트이며 의외로 코미디 감각도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구구절절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며 무게를 잡지만 사실상 <영춘각의 풍파>는 원-명 교체기란 역사적 시기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실존인물의 행적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영춘각 안에서 한정된 인물로 꾸려 나가고 있는 탓에 당대의 사회상이 공들여 묘사되는 것도 아니고, 의상이나 소품에 각별한 공을 들인 듯 보이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기본적인 설정과 사건의 전개 자체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얼마든지 끼워맞출 수 있을 내용이다. 중국이 아니라 서부개척시대 미국을 배경으로도 멋지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달까.

  

  오히려 특이한 점은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권력과 대의를 위한 음모와 암투도, 반란군 첩자들의 목숨을 건 눈치싸움도 아닌 소위 진상에 시달리는 자영업 종사자(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도, 사기꾼, 민폐 관리가 모두 왔다 가는 영춘각에서 손님(?)들은 음식이 싱겁다 짜다 트집 잡고, 직원을 성희롱 또는 성추행 하고, 구걸을 하며 영업을 방해하고, 대놓고 무력으로 강도짓을 하려들거나 알량한 권력으로 공짜밥을 먹으려든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모습들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통쾌하게 꽤 섬세한 결로 보여준다. 작중 배경인 14세기 때나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대나 2018년인 지금이나 사람 상대하는 자영업은 고달프단 현실엔 변함이 없기 때문인지, 중반까지 반란군 첩자 이야기에 별 진전이 없어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게 느껴진다.

   

  <영춘각의 풍파>의 클라이맥스 격인 마지막 격투 장면은 헐리우드의 미끈한 액션 영화에 익숙해진 현대 관객이 보기엔 전대물이 연상될 정도로 소박하다. 과장되고 다소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동작들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기 어려워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다고 (아마도 의도치는 않았을) B급의 기운이 수준 이하의 조악함으로 다가오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영춘각의 풍파>는 나쁜 화질 속의 타격감 없는 격투씬 마저도 재미있게 느끼도록 하는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영화의 끝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살아남은 인물들은 이제껏 영화의 배경이었던 영춘각을 태워버린 후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다 어디론가 떠나는데, 이는 왠지 영화제의 마지막 영화로 본다면 더욱 좋게 느껴질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