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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각의 풍파> 작가 호금전이 펼친 장인 기질의 절정

By 김현진


호금전 감독의 1973년 영화 <영춘각의 풍파><대취협>(1966), <용문객잔>(1967), 옴니버스 영화 <희노애락>(1970)에 이은 객잔 연작의 마지막 영화다. 그의 첫 무협영화인 <대취협>에서는 무협영화의 문법을 갓 배워서 익히고 있는 느낌이 있으며, <용문객잔>에서는 무협영화 속에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새겨야할지 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호금전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할만한 <협녀>(1971)로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러면 <영춘각의 풍파>는 어떨까.


<용문객잔>의 반복과 변주라고 부를 만한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호금전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호쾌한 속도의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미 가본 길이라 다 알고 있다는 듯, 호금전은 자신에게 익숙한 객잔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일사천리의 속도로 보여준다. 클로즈업, 트래킹 샷과 패닝 샷 등 온갖 촬영기법과 빠른 템포의 편집, 엄정한 구도로 촬영된 풀 샷의 미장센으로 많은 인물들을 소개하며 속전속결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단숨에 최후의 결투 장면까지 끌고 간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로 검술만을 주요 무술로 보여주었던 전작들에 비해, 권격 액션장면의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사는 홍콩의 골든하베스트다. 호금전마저도 이소룡을 기용한 일련의 쿵푸 영화들로 권격 액션의 시대를 열어젖힌 골든하베스트가 만든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느림과 여백, 우아함을 추구했던 호금전의 전작 액션 스타일과는 다르게 무술감독으로 홍금보가 기용되어 크고 강한 타격감을 보여주는 시원시원하고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


<협녀>가 호금전의 작가적 야심이 빛난 걸작이었다면 <영춘각의 풍파>는 그동안 쌓은 호금전의 공력이 당대 최고의 히트작들을 배출하던 골든하베스트와 만나 가장 대중적인, 그러면서도 이야기와 테크닉이 한 치의 엇나감도 없이 잘 다듬어진, 그의 장인적 기량이 최고조로 발휘된 걸작이다. 다시는 객잔 세트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는 듯이, 호금전은 불타는 객잔을 보여주며 <영춘각의 풍파>를 끝냈다. 실제로 이후에도 그의 객잔 영화는 없었으며, 그의 영화들은 점점 더 무협장르의 관습과는 등을 돌린 방향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