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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적막철도> :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아카이빙

By 정은진

 부산영화제에 여러 번 방문한 샤오 추첸 감독의 올해 영화는 기차와 대만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선물 같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기차에 대한 영화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기차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샤오 추첸 감독은 기차를 즐겨 타면서 대만인들에게 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나 고철덩어리가 아닌 기억을 담고 있는 기록창고와 같다고 생각하셨고 기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철도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고 어디의 철도를 찍을까 고민하던 감독은 직접 필드 트립을 하며 조사를 하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잊힌 곳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빠른 최신식 고속 철도나 거대한 역사를 가진 현대적인 전철을 찍을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가장 낙후된 지금은 잊혀 많이 타지도 않는 대만의 남쪽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남회선의 파란 열차를 찍기로 결정했다. 기획 당시 전기화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기차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무려 5년에 걸쳐 촬영한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에 등장해 막 일을 배우던 인턴 기관사가 영화 후반에 다시 등장하는데 5년간 한 인물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게 되었을 때, 한 인물의 성장스토리를 알게된 관객은 함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기관사들의 인터뷰가 주로 나오는데 그 낡은 기차 안의 좁고 밀폐된 기관실은 정말 기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대째 철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가족들 중 여럿이 철도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철도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또한 기관사들은 사명감도 굉장히 뛰어나다. 열차를 운행하는 것은 사람들을 다른 세계로 인도 하는 것과 같다며 승객들을 안전하게 모셔야한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명감이 너무 커서 열차 사고가 나거나 한 기관사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다시는 운전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분들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이 분들을 존중하고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닿는다. 그분들에게 헌정하는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기관사들의 이야기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철로를 수리하는 엔지니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남회선을 만들었던 당시 인물들의 인터뷰까지 나온다. 대만의 주요 철도는 대부분 일제 식민 시대에 개통하였으나 이 남회선은 산맥이 험준하여 뚫어야 할 터널이 많았기에 일본이 완공하지 않았던 곳으로 91년도에 대만인들의 힘으로 직접 완공하여 개통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로 공사 당시의 이야기까지 알 수 있다. 철로를 직접 완공한 엔지니어들과 그 지역의 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기차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한편의 멋진 역사 수업 시간과도 같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하는 큰 이유는 꼭 큰 화면으로 그 경관을 느껴보아야 한다. 감탄이 나오는 인서트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감독은 자신의 나라 대만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며 마음껏 뽐내고 있는 것 같다. 남회선은 한쪽은 산을 반대쪽은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데 말만 들어도 멋지지 않은가! 화면으로 보면 더 큰 감동이다. 일반 사진사들뿐만 아니라 기관사나 그 철도회사 직원들도 그 풍광을 담기 위해 휴일에 출사를 가는 장면들이 있다.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 험준한 산을 등반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결과물을 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취미생활이다.

 

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만’, ‘남쪽’, ‘철도이 세 단어에서 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시작부터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가는 오프닝부터 연연풍진이 떠오르면서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느낌이 처음부터 강하게 들었다. 열차안의 승객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남국재견이 연상되기도 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이 영화의 엔딩곡은 허우 샤오시엔감독의 영화에서 주로 음악 감독을 맡았던 감독님이 직접 작곡해주신 곡이라고 한다. 정말 끝까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 더 빠른 것을 원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심지에서 가장 멀고 가장 느리면서 가장 사람이 없는 시골구석의 낡고 오래된 기차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릴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대의 것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까. 블루 트레인의 마지막 운행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영화 초반에는 승객이 없어 텅 빈 객차는 제목에서처럼 적막함을 느낄 수 있지만 후반에 운행 종료 전에 마지막을 함께하고자 기억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적막하지 않다. <남쪽, 적막철도>는 소중한 아카이브이다. 과거에 향수를 가진 이들에게는 한편의 선물과도 같다. 과거에 향수가 없더라도 철도나 대만에 관심이 없더라도 무언가에 빠져 덕질을 한 경험이 있다면 공감 할 수 있는 포인트도 많이 있다. 나는 어느 분야의 한 덕후로서 성덕이 된 감독이 부럽기까지 하다. 영화관에서 꼭 다시 보고 싶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이다.

 

한국의 무궁화호도 곧 운행을 종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국에서도 무궁화호에 관한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아카이브 우리에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