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타지키스탄은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이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이다. 주변으로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카니스탄 등 이슬람 스탄 국가들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타지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파미르 고원을 비롯한 험준한 산악과 계곡이 장관을 이루는 보석 같은 숨은 여행지이다. 2,3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도 물이 흐르는 곳이면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타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고향과 같은 품을 내어준다. 이 영화의 배경도 아름다운 샤라다 계곡을 배경으로 하며, 그 자연이 그대로 미장센이 되어 그 마을에 푹 빠지게 한다. 이 마을에 머무르고 타지키스탄 계곡에 트레킹을 가고 싶게 한다.
이 영화는 타지키스탄의 여성 감독 이저벨 칼란다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망명 3부작> 중 1편이다. 이 영화는 망명의 주제 아래 <남겨진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돈 벌러 간 남편이자 아빠가 10년 째 돌아오지 않아 남겨진 가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타지키스탄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며,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흔하고 다크한 주제에 계속 나오는 시퀀스들이 있다. 바로 시(詩)에 관계된 장면들이다. 어머니가 시를 낭송하고, 딸도 시를 암송하고, 또 오빠나 다른 남성들도 시를 읽는다. 이 시에 대한 장면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나레이션과 같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영화를 시종일관 무겁게 끌고 간다. 출연한 모든 인물들이 웃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스러운 표정을 가진 순수한 어린이들도 절대로 웃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무겁게 가라앉은 영화가 묘하게 슬프지가 않다. 제목이 <또 다른 탄생> 이어서가 아니다. 바로 인물들이 읽고 외우는 시들이 관객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오지 않는 아들, 가정을 버린 남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배신당한 가족들, 친척들. 모두 말없이 지쳐있다. 그들은 대놓고 슬퍼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를 낭송한다. 그들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철없어 보이는 어린 딸도 심오한 시를 읊는다. 이를테면 ' 인위적인 남자가 인위적인 여자를 만나, 인위적이지 않은 아이를 낳는다 ' 같은 시도 아빠를 잃은 어린 딸이 읽는다. 이런 싯귀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소리 없이, 그러나 절절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해서인지, 타지키스탄의 깊은 산골 마을 여기저기에서 시를 읽는다. 남편이 떠난 엄마는 고단한 몸을 씻으면서 시를 읽고, 삶이 곤고한 마을 남성은 나무그늘 아래서 시를 읇조리며, 또 아빠를 찾고 싶은 아이는 냇가에서든 산꼭대기에서든, 요정을 기다리며 자신의 소원을 담아 시를 낭송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시적 정서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슬픈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하고, 고통 속에서도 그들이 갖고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서의 품위를 애정하게 만든다.
물론 절망의 시도 있다. 아이가 시를 암송한다. '오빠는 자주 절망한다. 절망은 그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그의 절망은 술집에 가면 사라진다' 이렇게 소녀가 암송하는 시를 들으며 우리는 위로받는다. 마치 슬픈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느끼는 감정이다. 이 영화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이다. 그 안에 재즈 음악과 함께 타지키스탄 산골 마을의 슬픈 서정이 시를 타고 흐른다. 타지키스탄의 전통적 모습인 히잡 쓴 여성들이나 이슬람 종교적 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일부러 <남겨진 자의 상황>만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적 모습보다는 퓨전풍 음악을 선택한 것 같다. 이 감독의 <망명 2부 : 여전히, 살아야만 한다 >, <망명 3부 : 부드러운 목소리의 죽음> 에서도 절망 속이지만 조용히 슬퍼하는 또 다른 감수성의 시(詩)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