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켈리 라이카트는 데뷔작 <초원의 강>(1994)을 두고 “로드 없는 로드 무비, 사랑 없는 사랑 이야기, 범죄 없는 범죄 이야기”라고 자평한 적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언급은 신작 <마스터마인드>에서도 유사하게 들어맞는다. 도난 행위는 존재하지만, 허술한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이뤄진다. 인물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만, 단순한 도피일 뿐 무언가를 향한 추구가 아니다. 전작들에 이어 켈리 라이카트는 다시 한번 장르를 재조립하고 있다. 이번에는 범죄 영화의 하위 장르인 하이스트 영화이다.
주인공 JB 무니(조쉬 오코너)는 미술품 도난을 준비한다. 이전에 가족과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다지 치밀한 계획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세운 계획마저도 몇몇 차질을 겪으나, 어찌저찌 범행은 진행된다. 이 우여곡절이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은 유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앞선 언급, 그리고 켈리 라이카트라는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영화는 이 범죄 자체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범행 이후 주인공의 삶에 더 집중하게 된다. 동시에 도난 행위를 기점으로 영화의 속도는 급격히 느려진다.
미술품을 훔친 이후, 영화는 느림과 관조의 태도를 보인다. 행동 혹은 사건에 대해 압축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생략 없이, 집요한 태도로 지켜본다. 또한 쓸모없는 부분들에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미술품을 숨기려 애쓰는 무니의 몸짓을 우리는 가감 없이 경험하게 되고,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나간 후에도 편집이 지연되기도 한다. 하이스트 영화라는 명목을 취했지만, 범죄를 도외시하고 영화의 속도감마저 뒤바꿔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단순히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그 여파를 보여주고 우리에게 경험하게 해준다. 영화 속 남성, 무니의 무능력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은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 가치가 무너지면서 여타 환경과 무니, 자신의 삶마저도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가정 환경에서부터 실질적인 주거 환경, 이후 무니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린 그 모든 것을 느린 속도와 관조하는 시선으로 생생하게 경험한다. 덕분에 우리는 무너진 가치와 그 여파로 인한 고통스러운 시간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제목인 <마스터마인드(The Mastermind)>의 의미는 명사로 ‘지휘(조종)하는 사람’, 혹은 동사로 ‘지휘(조종)하다’이다. 그에 반해 영화 속 등장인물은 단어의 의미처럼 무언가 능동적이기보다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인상이다. 범죄를 나름 능동적으로 저지르지만, 난관을 돌파해 나가는 듯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역시 비슷한 맥락, 반어법적인 맥락에서 영화가 선사하는 힘겨운 시간을 그저 마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