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때때로 기교가 과한 신인 감독의 영화가 있다. 이 경우 숏과 숏의 이어짐과 끊어짐이 영화의 기본이라는 교과서적 명제에는 충실하지만, 이 속에서 영화의 흐름은 자주 맥이 끊기고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관객의 머릿속에 쉽게 가닿지 못한다. 거꾸로 메시지가 과한 신인 감독의 영화도 있다.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이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관객의 머릿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달되지만, 형식적 미학에 편승하지 못한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관객의 마음에는 가닿지 못하고 한편의 일장연설이 되어 상영관을 배회한다. 그런 메시지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상영관 문이 열리면, 관객의 퇴장과 함께 영화관 밖으로 흩어지고야 만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고, 십여 년 전 단편 영화 <주리>를 연출했던 김동호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역시 신인 감독들의 이런 실수를 피해 가지 못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번 그의 영화는 메시지가 형식을 압도하는 후자의 경우에 가깝다. 이 영화의 형식은 무척이나 투박하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영화 연출을 마음먹은 노년 김동호의 모습이 여과 없이 공개된다. 매 순간 그의 몸은 그의 마음보다 한 발짝 뒤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이 반 박자의 늦음 속에서 그는 좌충우돌한다. 그는 카메라의 작동법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 영상제작자로서, 카메라는 본의 아니게 자주 흔들리고 때때로 영상은 상하좌우가 완전히 뒤바뀐 채 찍히기도 한다. 반면 영화란 무엇이고, 영화관이란 어떤 곳인지를 묻는 이 영화의 여타 스케일은 실로 방대하다. 질문 자체가 결코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독 김동호로부터 이 질문을 건네받은 이들 역시 영화계에서의 경력과 명성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들이다. 더욱이 감독은 이 질문을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결국 간단한 형식에 비해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인상을 우리는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영화의 이런 비대칭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상영 중에는 메시지가 상영관의 분위기를 결코 짓누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소 투박한 진단이지만, 이 영화에는 감독의 오랜 관심사인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그의 태도가 표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감독은 영화를 찍음에 있어서 자신의 서투른 모습을 구태여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독 본인의 화려한 경력과 여기서 비롯된 권위를 방패 삼아 영화의 투박함을 무시하고 이 영화에 진하고 굵은 자신만의 인장을 찍겠다며 거만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감독과 배우가 한 숏에 잡히는 장면이 영화에는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마다 감독은 인터뷰의 대상 앞에서 자신을 한껏 낮춘다. 대학생들의 졸업영화제에 참석하여 졸업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대면할 때, 그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자 한 명의 관객 그 이상으로서의 불필요한 권위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에게 역으로 질문을 받을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추억에 잠겨 영화관에 얽힌 자신만의 오래된 기억은 이야기하지만, 영화란 무엇이고 영화관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그만의 대답은 애써 피한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된 이후 십여 년을 영화인으로 살아온 그이다. 카메라를 다루는 법은 서툴지언정 영화에 대한 감식안만큼은 여느 평론가 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만큼은 그는 초심으로 돌아간 듯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어쩌면 무언가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아 있다. 숏과 숏을 이어붙이고 때내는 것이 어떤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지를 알기에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좌충우돌하다가 숏과 숏의 형식적 의미를 뒤늦게 이해하는 자의 얼굴이 이 영화에는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감독의 태도가 이러하기에, 그에게 질문을 건네받은 내로라하는 감독과 배우들 역시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조금 더 고심하고 정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카메라의 구도는 성길지언정, 이 영화에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인터뷰를 주고받는 이들의 상호 존중감이 꽉 들어차 있다. 이 상호 존중의 태도는 자칫 명망에 가려지기 쉬울 인터뷰의 주제가 분명하게 돋보이는 데 기여하고, 이런 태도의 지속적인 반복 노출로, 어느덧 이 태도는 관객의 것으로 전이된다. 수십 명을 카메라 앞에 앉혀 놓고 묻고 또 묻는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 역시 스스로에게 부지불식간 한 번쯤은 물을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영화관이란 어떤 곳인지요?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의 문이 활짝 열릴지라도, 우리는 이 질문을 묻고 또 묻던 감독의 낮고 애정 어린 그 태도 만큼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