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생명 소멸의 어두운 죽음과 생명력 넘치는 소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의외로 생경하지는 않다. 죽음과 소녀는 많은 시와 가곡, 회화의 소재로 쓰여왔다. 대개 어둡고 불안한 이미지지만 소녀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슈베르트의 소녀는 죽음을 무서워하고, 에곤 실레의 소녀는 죽음을 기꺼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8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 <르누아르>는 죽음과 소녀를 어떻게 표현할까. 또 11살 소녀 후키는 죽음에 대하여 어떤 모습을 보일까.
기존의 죽음과 소녀를 다룬 작품들이 무겁고 비장하였다면, <르누아르>는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영화는 소녀에게 시선을 가까이 두고 생동감 있게 소녀의 생활에 스며든 죽음을 포착한다. 아버지의 병으로 가족들의 생활과 관점, 태도가 변하고, 후키 역시 죽음에 천착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과 엉뚱한 상상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는 여름날의 여러 사건에 긴장과 완화를 거듭 부여한다. 여름의 쨍한 햇볕과 노랑과 초록, 맑은 하늘의 색감, 불과 물이 주는 에너지는 죽음의 그림자와 기묘하게 얽혀든다. 여기에 가까운 이와의 이별을 겪게 될 소녀의 숨길 수 없는 생기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바스러져 가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과 교차하며 복잡한 소녀의 심경은 완결된 하나의 이미지 태피스트리로 직조된다.
복합적이어서 표현하기 어려운 소녀의 심경은 말하지 않고도 마음이 닿는 텔레파시와 심령술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난다. 대면하지 않은 채 전해지는 진심과 거짓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후키는 때로는 명랑하고 때로는 우울하며, 무신경하지만 예민하기도 하다. 관객들은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악의, 두려움, 연민, 혐오감을 지켜보며 후키라는 소녀의 감정적 동요와 성장을 함께 한다. 영화는 미숙하기에 더욱 찬란한 삶의 한가운데에서의 불안과 고통,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소마이 신지의 영화와 닮았다. 공상과 현실, 기도하는 마음과 소통의 엇나감과 부재는 한 곳으로 응집되어 이윽고 관객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영사기가 작동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영화는 여름이라는 계절적 이미지, 빛과 소리가 어우러지고 또 대비되며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소녀의 여러 감정과 사건이 합쳐져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모습을 그린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닮아있기도 하다. 거울에 반사된 빛을 따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후키를 따르다 보면 관객들은 소녀를 걱정하고 응원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소녀의 모습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관객에게 그동안 수없이 변주된 죽음과 소녀에 대하여 다시금 생경한 감각과 경이로움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