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오빠를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로> : 시선이 머무는 자리, 움직이는 마음들

By 오민지

​  오빠가 죽었다. 정확히는 내 오빠의 죽음을 낯선 경찰에게 전해 들었다. 무난한 일상을 한순간에 와해시킬 정도의 소식이 아닌가. 그럼에도 어쩐지 리코의 표정이 뭔가 미묘하다. 가족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당황한 건지, 귀찮은 건지 찌푸린 미간 사이 감정을 읽을 수 없다. 일단 담담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드디어 올 게 왔다는 결연함까지 느껴지는 눈빛이 흥미롭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작가인 리코는 북토크에서 가족에 관한 질문을 받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남매의 어린 시절, 오빠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던 어린 리코의 커다란 눈망울이 보이고, 오빠에 대한 리코의 감정을 보여주는 상황들이 속속 화면을 지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오빠는 마침내 리코의 소원대로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가 되었다. 이제 오빠는 그녀에게 돈을 빌리지도, 생활비를 달라며 갖은 핑계를 매단 메일을 이틀 단위로 보내오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오빠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리코의 삶은 평안할까? 장례를 마무리하기 위해 오빠에게로 향하는 여정은 무탈할까?


  보통의 관점에서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때론 어떤 지점에서 가장 멀어지기도 한다. 가족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삶의 핵심인 동시에 일종의 속박이다. 마냥 행복의 원천이 되어주지 못하는 가족과, 그 무력감에 직면한 개인의 아이러니를 영화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갈등,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 솔직한 내면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오빠의 장례를 위해 도호쿠 지역으로 건너간 리코와 그의 전처 카나코, 딸 마리아가 머무르는 장소인 오빠의 집과 그가 살던 도시를 배경으로 그들이 움직이는 모든 공간과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한다. 오빠가 떠나고 남은 세 인물은 그들의 동선을 따라 오빠의 흔적을 마주하며 묵은 감정을 풀어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영화는 가족이기에 더 몰랐고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음을 넌지시 알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방치해둔 탓에 풀리지 않는 오해를 만들어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애도를 이루는 과정을 각 인물들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섬세하게 포착한다.


  갑작스런 오빠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자의 관계를 돌아보고, 정돈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리코는 주어진 며칠의 시간, 오빠가 살던 집에 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고, 남을 통해 몰랐던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게 된다. 이는 곧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는데, 리코는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오래 전 한 톨도 남기지 않은 채 공백으로 비워둔 마음 한 켠의 자리에 오빠를 유일한 가족의 자격으로 다시 채워 넣는다. 리코와 카나코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잊고 살 사람들과의 느슨한 관계도 오빠라는 존재로 인해 끊어질 듯 끊이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 떨어져 지냈던 카나코와 아들 료이치가 다시 만나 같이 살게 되는 감격의 순간도 담아낸다. 카나코에게 한때 가장 사랑했던 전남편이자, 료이치에겐 한없는 사랑을 주던 아빠였던 오빠의 죽음은 그들에게 적어도 비슷한 무게의 상실을 던져주었다. 그들은 마주보고, 대화하고, 후회의 눈물을 쏟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상실을 경험한 이들과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시종일관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다정함을 견지한 채 인물들과 동행하며 천천히 걷는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오빠의 죽음이 있은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을 리코는 자신의 책에 써넣은 한 줄로 간략히 설명한다. 가족은 속박이 아니라 버팀목이라는 것.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이들은 슬퍼하면서도 글을 쓰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거나, 가족의 행사를 챙겨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결국 회복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다정함으로 무장한 영화의 동행은 무수히 남은 날들을 견뎌야 할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위로이자 격려가 된다.

관련 기관 사이트

  • 부산광역시
  • 문화체육관광부
  • 영화진흥위원회
  • 영화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