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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 이건대체무슨장르란말인가

By 정인범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직 의무교육기관도 들어가기전, 동네 애들과 놀면 꼭 그 중 몇 명은 벌레를 눌러댔다. 개미랄지, 날개를 떼어버린 잠자리랄지, 인고의 시간을 끝내고 땅에서 기어나온 메미랄지. 그 행위가 묘한 만족을 그들에게 주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더 커지진 않았다. 길고양이의 밥에 이상한 걸 탄다든지, 유기견을 산속으로 끌고 가서 목을 매달아 버린다든지, 아니면 사람을 찔러버린다든지. 그 행위에 대한 시비와 선악을 차치하고 그저 그들이 그랬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진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쩔수가없다>의 만수는 더 나아가고, 그랬던 것들이 그렇지 않은 인물이다. 순탄한 삶을 살던 중년 남성이 대뜸 타겟을 정하고 사람을 죽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동종업계의 사람이 제거되면 재취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딘가 단단히 과정이 생략된 행위의 동기랄지, 그 흐름이랄지 하는 것들을 박찬욱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이 얘기한다. 

 

“재수 없게 해고 당하면 이런 짓 즈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영화의 배경 역시 이런 뒤틀린 사고와 묘하게 맞닿아 있는 구석이 있다. 요컨대, 만수가 사는 곳이랄지, 만수가 뛰쳐나오는 배경으로 이질적인 두 도로가 교차되는 장면이랄지. 우리네 일상과 퍽 맞닿아있지 않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분재가 가득한 집이며 온가족의 행복이 깃든 도시 너머의 전원 생활. 이질적인 배경이 교차되어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현실과 유리된 또다른 욕망의 실현장소인지, 우리는 구분할 수 없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분하지 않길 원한다). 

 

 그렇기에 이것을 단순한 블랙코미디로 치환하기엔 어딘가 낯선 구석이 여러모로 존재하고, 그렇다고 부조리코미디로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로 생각하기엔 서늘한 사회문제를 너무도 적극적이고 꾸밈없이 찔러내고 있다. 그가 그리는 사회 문제는 아주 오랜만에 곁에 있다. 그 말은 즉슨, 우리가 언제든 만수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암시로 까지 보인다. 근원적인 감정이나 시대적 배경을 빌려 어떠한 감각을 드러냈던 그가, 아주 오랜만에 시스템의 구조 자체를 진단하려 든다.  

 

 더구나 <어쩔수가없다> 그의 전작들처럼잔혹함을 미학화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허탈한 웃음과 냉정한 분노를 화면에 뒤섞으며, 관객에게도 모호한 공모 의식을 요구한다. 우리는 만수를 조롱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의 처지를 이해해버리고, 다시 경멸한다. 바로 진동이 박찬욱식 현실 인식이며,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단순한 장르적 분류를 거부하는 이유다.

 

 박찬욱이 그리고 싶던 궁극적인 상像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사이 어딘가에서 항해하며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과감한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따지고 보면 <어쩔수가없다>는 장르적 구획보다도 관객이 느끼는 불편함 자체를 핵심으로 삼는다. 웃음과 공포가 뒤엉킨 자리에 영화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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