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영화는 시작부터 소리를 먼저 제시한다. 암전 속에서 기내 방송, 좌석벨트 사인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비행기 내부를 상상하게 되지만 곧 드러나는 화면에서 니코는 이미 뾰로통한 표정으로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다. 소리는 이미지보다 먼저 도착하고 때로는 방향을 틀어 듣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미묘한 어긋남을 유도한다. 종종 깨달음이나 이해가 한 박자 늦게 찾아오는 관계의 속성을 닮았다. 동시에 이는 영화 전체에 반복될 소리와 이미지의 불일치와 반전을 예고하는 축약된 오프닝이기도 하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특정한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동네 아이들이 ‘유령’이라 부르는 기괴한 소리 때문에 관객과 아이들 모두가 오해와 불안을 함께 경험하지만, 그 소리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공포는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또한 인물의 개성과 세대 간의 차이도 소리로 표현한다. 니코가 등장할 때는 휴대전화 벨 소리와 게임기의 삑삑거림 같은 현대적이고 전자적인 소리가 들리는 반면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관습이 중요한 젤라를 비출 때는 기도하는 소리와 부채질 소리, 새의 지저귐과 거리의 소음처럼 느리고 일상적인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더불어 영화는 ‘여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열지 말라는 경고는 번번이 무시되어 니코는 젤라가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고 커튼을 걷고 엑스레이 필름으로 문을 딴다. 무언가를 여는 일상적인 행위가 물리적인 동작을 넘어 관계의 문턱을 넘는 상징적 몸짓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관계에서 문을 열어젖혀야만 마음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젤라가 슬픔에 잠겨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 니코는 젤라가 알려준 ‘기본 요리’를 하고 젤라에게서 배운 다림질로 옷을 다려 놓고 문밖에서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신나게 문을 열고 다니던 니코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젤라를 위해 쿠키를 구워 온 이웃 할머니가 누르는 초인종도 마찬가지다. 직접 문을 여는 대신 상대가 문을 열게 한다. 영화는 이렇게 계속되는 ‘열림’으로 관계 속에서 서서히 쌓이는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관계를 맺는 일은 문을 열고, 닫고, 다시 기다리는 일의 반복이다. 귀를 한껏 기울여도 생기는 오해와 이해 속에서 니코와 젤라의 사이는 억지스러운 화해나 감정의 폭발 없이도 조금씩 무르익는다. 영화의 마지막, 오래된 저택에 함께 사는 이들이 모여 시칠리아 해변으로 향한다. 젤라가 일상의 반복을 깨고 익숙한 집을 벗어나 탁 트인 공간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니코도 함께다. 아이들은 해변을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고 노인들은 모래 위에 모여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꽝꽝 닫혀있던 문을 열면 뜨거운 햇빛과 바깥의 다양한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여름은 니코와 젤라처럼 서로를 침범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