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올 추석 극장가를 두드릴 영화, <보스>! 식구파의 차기 보스는 누구인가! 한국형 조폭 코미디가 라희찬 감독의 MZ 감성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건달 영화인가 싶지만 2000년대 복고풍이 은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새로운 시각으로 기존의 문법을 뒤엎는 재해석이 제법 유쾌하다. 한국 대중영화사의 가장 특수한 장르 중 하나였던 조폭 코미디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뉴트로 스타일로 돌아와, 익숙한 웃음과 함께 신선한 자극까지 주는 코믹 액션 으로 재탄생했다.
1990년대 말 부두와 나이트, 호텔을 평정하고 전국 제패를 꿈꾸던 식구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주먹의 시대는 저물고, 보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조직은 차기 보스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놓인다. 예상대로라면 피 튀기는 권력 쟁탈전이 벌어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첫 번째 후보, 나순태(조우진)는 중식당 미미루 프랜차이즈 계약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중식계의 보스를 꿈꾸는 중이다. 또 다른 강력한 후보, 동강표(정경호)는 우울한 감옥 생활 중 운명처럼 심장이 뛰게 하는 탱고를 만나 탱고와 함께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폭발적 카리스마 조판호(박지환)는 누구보다 조직을 사랑하며 1인자를 꿈꾸지만 주변 누구도 그를 보스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와중에 미미루 배달원으로 잠입한 경찰 태규(이규형)의 첩보활동이 난항을 겪으며 조직의 미래는 더 예측불허한 혼란으로 흘러간다.
매력적인 코미디다. 명확하고 힘 있게 진행되는 직관적인 서사와 배우들의 명연기로 완성한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기분좋은 몰입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정말 잘한다. 각 인물의 엉뚱한 욕망을 진정성 있게 그리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설득이 되고 상황적 아이러니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단순한 줄거리 덕분에 관객은 큰 줄기를 쉽게 따라가면서도, 참신한 전개가 다음 장면을 자꾸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늘어지는 장면 없이 빠른 템포로 장면을 전환하고, 긴장을 높였다가도 금세 웃음 한번 터뜨리고 다시 밀어 붙이는 호흡이 좋다. 최근 관객들이 익숙해진 숏폼 소비 팬턴과도 맞닿아 있다. 덕분에 영화는 ‘빠르고 경쾌하다’는 인상을 남기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청각적 스펙타클이 이 영화의 또 다른 힘이다. 인물의 개성은 액션씬에도 담겨 있다. 순태의 칼잡이 액션, 강표의 탱고 액션, 판호의 허세 액션, 그리고 태규의 은밀한 첩보 액션이 슬랩스틱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시원한 쾌감을 준다. 메인 테마로 쓰인 캔의 ‘내 생애 봄날은 간다’는 직관적으로 영화 전반의 톤과 분위기를 정확히 관통한다. 무거운 상황에도 이 곡이 흐르는 순간, 관객은 향수와 아이러니를 동시에 느끼며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여러 유명곡들이 삽입되어 박력 있게 관객을 끌어당긴다.
〈보스〉가 진정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 조폭 코미디의 틀을 단순 답습하지 않고 시대적 맥락으로 업데이트했다는 데 있다. 2000년대 조폭 코미디가 권위와 폭력을 우스꽝스럽게 다뤘다면, 이 작품은 아예 그 권위 자체를 조롱한다. 누구도 보스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은 요즘 젋은 세대가 관리직을 꺼리고 승진을 부담스러워하는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순태는 자기 사업과 효능감을 좇는 모습으로, 강표는 승진보다 개인 취향을 우선하는 태도로, 판호는 욕망과 역량의 괴리로 이 현상을 드러낸다. 과거 장르의 틀은 차용하면서, 현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통찰을 제대로 불어넣어 뉴트로식 변용에 성공했다.
예나지금이나 이 장르가 지닌 본질적 한계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이만큼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은 드물기에 참 반갑다. 쉬운 서사, 진정성 있는 웃음, 감각적 음악과 액션, 그리고 시대 풍자. 오락 영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핵개인화 콘텐츠 시대에 극장의 존재 이유는 결국 감상과 호흡이 공유되는 경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보스>가 세대를 아우르는 코드로 관객들을 하나의 웃음으로 묶어내는 영화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