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영화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철이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철택과 그런 아빠를 간병하게 된 정미,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현숙 등 챕터 형식으로 구성된 영화 <철들 무렵>은 이 세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취학 아동부터 90세의 노인까지 다양한 나이대가 돋보이는 영화 속 인물들은 각 세대 간의 갈등과 변화를 담아 현대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맞벌이 부부, 부모 부양 문제, 꿈과 실력 간 간극 등의 문제 속에서 영화는 부모 부양 문제를 주로 다룬다. 철택과 정미, 현숙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정미의 동료가 효도 계약서에 대한 운을 떼면서 철택과 정미의 간병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철택은 검사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기 전 아파트 복도에 금이 간 낡은 벽을 쓰다듬으며 낡은 아파트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본인의 늙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철택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을 챙기기보다 당장의 즐거움을 우선시하고 병원비 문제를 정미에게 떠넘긴다. 정미도 하루아침에 생업과 간병을 떠맡게 되면서 무명배우로서의 삶은 달라진다. 아빠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자신이 치르게 될 희생과 보상을 먼저 생각한다.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던 이들의 병원 생활은 이제 퇴원해도 되겠다는 담당의의 말에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게 된다. 철택이 가장 먼저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말다툼으로 번져가고 이들의 감정은 점차 격앙되어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상처 입힌다. 앞 길을 막지 말라는 정미와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는 철택, 이들의 불만 섞인 말다툼에서 희생에 관한 현대 사회의 문제가 엿보인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일은 기본적인 의무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을 품지만,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의무에 있어서는 양측의 의견이 대립된다. 철택 또한 정미에게 해주었던 일들을 읊으며 자신을 부양해야 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한다.
반면에 오랜 별거 생활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근사한 저택에 혼자 살면서 여유 생활을 즐기던 현숙도 형제자매들에 의해 가족 문제로 휩싸인다. 구순잔치를 홀로 떠안고 어머니 옥남마저 자신이 모시게 될 상황에 처한다. 저마다 "우리는 가족이 있지만 너는 혼자이지 않느냐"라는 말로 현숙을 설득하지만 현숙에게 이는 그저 핑계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정작 옥남은 혼자 살겠다며 이에 반대를 한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옥남의 내레이션은 옥남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과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을 들려준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옥남은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희생되었던 인물과 가족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인물, 혼자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받는 인물 등 영화는 아직 철들지 않은 어른들과 저마다의 이유로 희생을 하게 되는 어른들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동민이는 유치원에서 나눠주는 다육이 식물을 양육 받는다. 이는 곧 동민이 하게 될 양육과 희생을 보여주면서 세대 간의 갈등과 변화는 여전히 계속 반복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