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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들> : 서울, 2025년 겨울

By 유강미

   일상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출근하기, 퇴근하기, 일어나기, 세수하기, 머리 빗기, 밥 먹기. 최승우 감독의 <겨울날들>은 그저 겨울날을 살아가는 서울 청년들의 일상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농촌의 일상과 계절을 순환을 다룬 감독의 전작 <지난 여름>(2023)의 연장선으로, 서울로 이사한 주인공 민우의 생활을 중심으로 서울의 겨울날들을 묵묵히 관찰한다. 사건, 주인공, 대사를 모두 삭제하고 오직 반복되는 일상의 이미지와 도시의 소음으로만 84분을 채운다.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구조를 벗어나 관객은 도시의 공기와 계절의 질감을 느끼며 익명의 인물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최승우 감독은 전통적인 영화 언어와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포착하여 시각적, 청각적 감각만으로 영화를 구성하였다. ‘쓰여지지 않는 장면들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철거 현장, 퇴근 전철 풍경, 새벽 골목길 계단 오르내리기 같은 장면의 반복이 유일하게 리듬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최소한의 컷과 롱테이크를 통해 실제 시간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현실감을 높인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영화이다. 인물들은 그들의 일상적 동작으로만 관찰될 뿐 어떠한 개성적 자아나 개별적 서사도 갖지 않는다. 출퇴근 인파 속의 여자, 철거 현장의 남자, 골목길의 남자 등은 모두 ‘도시의 사람들’이라는 집합적 이미지 속으로 흡수된다. 이때 결국 관객은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대신 익명의 군상을 통해 ‘지금 여기’의 한국 도시 풍경을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거리감과 절제된 형식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면서도, 일상의 진짜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또한 익명의 존재들 속에서 스스로를 감각하게 된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1960년대 서울의 낯설고 차가운 공기를 포착한 대표적 한국 모더니즘 소설이다. 겨울이라는 계절, 도시라는 무대, 그리고 정체가 지워진 인물들의 모습이 두 작품 사이에 교집합을 그린다. 

   역설적이게도 대사가 하나도 없는데 너무 시끄럽다. 도시의 소음이 모든 장면을 빈틈없이 채우기 때문이다. 영화적 장치라기보다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인 일상의 단면이 느껴진다. 말이 없다는 건 곧 대화가 없다는 것이고, 대화가 없다는 건 사회적 고립과 단절을 뜻한다. 한강 다리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가 중 일부는 없는 국번 안내가 흘러나온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무런 드라마가 개입되지 않는 건조한 보도일 뿐이지만, 생의 마지막 소통조차 허락되지 않는 고독이 온전히 전달된다.

   〈겨울날들〉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이지만, 그 부재 자체가 곧 메시지가 된다. 사건을 지워버린 자리에 남는 것은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내던 서울의 겨울 공기,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익명의 군상들이다. 중요치 않은 행동들과 의미 없는 순간을 가만히 바라봄으로써 그 중요와 의미를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고 사유하도록 만든다. 이에 이 영화는 삶을 감각하고 기록하는 또 다른 방식의 영화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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