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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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 난기류를 통과하는 비행기

By 고명수

  아주 고약한 조종사를 만났다. 대여섯번 정도 장거리 비행을 해봤다는 이 조종사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난기류를 즐기며 찾아다니는 것도 같다. 때문에 이 <굿뉴스>라는 비행기를 탄 관객들의 속도 덩달아 울렁거린다. 하지만 이 울렁거림도 잠시뿐일지도 모른다. 이미 이 조종사가 몰았던 비행기를 몇 번 타봤거나, 울렁거림에 어느 정도 빨리 적응한 관객들은 어느덧 이 조종사의 난폭한 비행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의 경험을 고백하자면, <굿뉴스>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숏과 숏의 연결과 분절이라는 영화의 문법을 아주 찰지게 활용한 2시간여의 비행 체험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은 기류 변화가 심하다. 하지만 기장 변성현 감독은 기어코 그 속으로 비행기를 이끈다. 하이재킹을 다룬 영화는 많다. 범인들이 비행기를 납치할 때의 긴장감, 수많은 탑승객을 구하기 위해 그런 범인을 향해 달려드는 어떤 용사의 등장에 대한 실말의 기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벌어지는 물리적, 심리적 충돌을 바라보는 박진감, 이 모든 요소들이 하이재킹 영화라면 으레 따르는 기본적인 서사의 구도이자 연출상의 주안점이다. 하지만 변성현 감독은 이 모든 장면을 짧게 자르고 그 사이사이에 느닷없는 장면을 이어 붙인다. 적군파의 비행기 납치 장면은 이 영화의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첫 번째 지점일테지만, 감독은 이 장면을 무수히 분절하고 비행기 안의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천하태평인 비행기 바깥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병치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해당 시퀀스가 장르적 문법에 따라 전형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막는다. 분명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장면이지만, 카메라가 일촉즉발의 비행기 옆으로 너무나 고요한 활주로를 부감으로 내려볼 때, 긴장감에 꼭 쥐던 나의 악력은 순간 무안해진다. 이렇게 장면을 분절하고, 그렇게 잘게 잘린 상이한 분위기의 숏들을 서로 뒤섞으며 숏과 숏 사이의 미묘한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감독의 연출은 이후에도 수차례 반복된다.

 

  영화에는 분명 안정된 항로가 있다. 영화는 일명 요도호 납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비행기의 출발점이 도쿄라는 것도, 도착지가 평양이라는 것도, 영화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이상 바꾸기 쉽지 않고 감독 또한 그것을 굳이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신 감독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비행일지라도 비행의 질이 관객에게 전혀 다른 여행을 선사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대상을 분절하고 상이한 성격의 대상들과 그것의 파편들을 뒤섞는 것, 이것은 장면 연출에서 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굿뉴스>에는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 영화는 인물의 표면에 숨겨진 이면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면이 인물의 본질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는 인물을 세팅함에 있어 역시 이면과 표면을 뒤섞는다. 오히려 아무개의 경우, 이따금 카메라를 바라보며 현재의 관객들에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비행기가 납치된 1970년대의 인물인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와 동시대의 자로서 과거를 설명하는 인물인가? 감독은 이렇게 장면과 인물의 각 특징을 뒤섞고 더 나아가 시간마저 혼란스럽게 만든다. 

 

  감독의 이런 연출들로 인해 영화 전반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배회하는데, 그것은 비행기가 비행할 때 겪는 난기류를 닮아있다. 난기류는 비행의 과정을 메타적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이 난기류는 관객으로 하여금 숏과 숏 사이의 이질감, 한 인물내의 복잡다단한 심리 간의 충돌을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독재를 행하는 적군파의 행태, 평화를 외치며 그것을 위한 희생 정도는 불가피하다는 그들의 언사, 이런 행태와 언사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모순된 행태와 언사를 코미디와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장르에 뒤섞어 제시한다. 영화 속에서 이런 구조적 이질감이 불거질수록 관객은 저 장면을 받아들임에 있어 어떤 장르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인물의 어떤 행태에 진의를 느껴야할지 헷갈리게 된다. 어쩌면 변성현이라는 조종사가 원하는 것은 관객이 거듭되는 이 어긋남의 난기류 속에서 부조리가 되었든, 삶의 역설이 되었든 여하튼 영화에 내재된 불분명한 무엇인가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어떤 감정적 회오리에 휘말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환희가 됐든, 씁쓸한 비애가 되었든 관객이 이 난기류를 통과하는 비행 끝에 모종의 감정적 격류에 휩싸인다면, 기장 변성현은 그의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이 김포공항이든 평양공항이든 그곳이 어디든 무관해 보인다. 어차피 그곳에서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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