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영화 <시라트>는 살갗을 하나씩 벗기는 듯하다. 사운드는 절벽을 가르듯이 강렬하고, 먼지만 날리는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러닝 타임 내내 텅 비고 끝없이 광활한 곳에서 모든 것이 소멸할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사막 한가운데 스피커들이 층층이 쌓여가고 그곳에서 나온 소리는 바닥 깊숙이 들어가 땅을 울린다. 술과 약에 취해 보이는 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땅에 발을 구르며 박자에 몸을 맡긴다. 자유롭다 못해 날것 같은 그들 사이로 실종된 딸을 찾는 루이스(세르지 로페스)와 그의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즈)이 등장한다. 딸을 찾는 전단지를 돌리는 중 한 레이버 무리를 통해 모리타니 남쪽에 또 다른 레이브 파티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침이 밝아오고 군인들이 들이닥치며 파티는 중단된다. 곧 전쟁이 발발한다는 소식과 함께 레이버 집단과 군인들이 충돌하고 카메라는 서 있는 군인들 뒤편으로 넘어가 그들을 비춘다. 경계선 뒤 그곳으로 개 한 마리가 지나간다. 통제된 곳 너머 조용하고 자유로운 곳. 카메라가 위치했던 곳과 같이 새롭게 춤출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한 레이브 집단이 군인들을 따돌리고 빠져나온다. 그리고 루이스와 에스테반도 그들을 쫓아간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전쟁을 보여주지 않으며, 그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잠시 들려올 뿐이지만 사운드와 배경을 통해 시종일관 종말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시라트>의 감독 올리베르 라시는 제목의 뜻을 묻는 인터뷰에서 道(Tao)를 언급했다. 道(Tao)는 단순히 발로 걷는 물리적인 길 이외에도 ’방법‘이나 ‘진리’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길을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해 본다면 그들은 애초에 목적지에 갈 수 없다. 길에는 답이 없으므로. 그 너머로 가기 위한 길의 폭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날카롭고 좁은 폭의 길을 때로는 절벽으로, 수로로, 늪지대로, 사막으로 표현한다. 실낱같이 가느다란 길은 혼란하고 불안정한 인생처럼 인물들을 흔든다. 결국 <시라트>에서 인물들이 목적지에 도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고 어딘가 부서져 있는 인물들의 갈망으로 나아가는 여정. 서로에게 의지할지라도 그들은 벼랑 끝에 있다는 것.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고독하고 소멸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다시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검은 화면에 자막이 뜬다. '그 길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칼처럼 날카롭다.' 이것은 경고문이다. 이 길은 뒤를 돌아볼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곳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땅에 더 발을 구르기 위해, 계속 춤추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