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사랑하고 용서하며 비워 가는 순정의 삶

By 김문홍

사랑하고 용서하며 비워 가는 순정의 삶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세 사지 색 : 블루>

 

 

 

김 문 홍

 

이별 뒤에 오는 성찰의 시간

 

크쥐시토푸 키에슬로브스키의 <세 가지 색 : 블루)(1993, 98)은 한 여인의 성찰을 다룬 영화이다. 이 작품은 1996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겨 준 영화이지만, 흔히 말하는 예술적 기능의 두 가지인 재미성(쾌락적 기능)과 성찰(교시적 기능)을 함께 아우른 작품이다.

영화는 산업적 속성 예술적 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투자 대비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아울러 재미와 예술적 깨달음을 관객에게 동시에 주어야 하는 이질적 성격이 강한 예술 장르다. 재미만 좇다 극장 밖을 나서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재미만 추구하다 보면 뭔가 허전한 것이 있는 반면에, 성찰이라는 교시에만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려워져 관객을 자장 밖으로 밀어낼 위험성이 큰 예술이다.

<세 가지 색 :블루>는 예술의 두 가지 기능을 교묘하게 아우르고 있는데, 재미와 성찰의 위험한 줄타기를 잘 비껴가고 있다. 한 음악가의 아내인 줄리(줄리엣 비노쉬 분)가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나서 부터,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신의 삶을 비워가며 순정의 삶을 살아가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서사적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는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물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 줄 리가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동양적 사고에서 볼 때 문득 노자 도덕경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보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곳에 머물기에 도에 가깝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 주인공 줄 리가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물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물의 이미지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여성이 어떤 상황이나 장면에 붙들려 있을 때마다 화면이 하얀 백색으로 가득 채워지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러한 예술적 기교 역시 주인공 이 순간 순간에 성찰하는 모습을 백색 화면이라는 상징적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의 조수와 정부를 사랑하고 보듬으며 비워 나간다

 

줄리는 남편과 아이의 장래식이 끝나자 마자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청산하는 심리적 여정에 오르기 시작한다. 남편은 유럽통합기념 연주에서 들려줄 음악을 작곡하고 있었는데, 음악가인 한 남자가 조수로 일하고 있다. 이 남자가 줄리에게 연정을 품고 사랑을 고백했는지, 아니면 여자가 먼저 그 남자가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낌새를 알았는지의 전사(前史)는 보여주지 않는다.

줄리는 그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자신의 사랑을 그 남자에게 바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그 남자, 아니 그 남자의 음악적 천재성을 회복시켜 주기에 이른다. 그 남자가 남편이 작곡하다 만 악보를 그녀에게서 건네받고, 중지된 그 이후부터 남자가 작곡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으슴프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죽은 남편에게는 정부가 하나 있었다. 줄리는 이미 그런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줄리는 변호사 수습을 받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고, 그 여자는 줄리의 내방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녀는 이미 죽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줄리는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이 지극한 사랑의 감정으로 그녀를 돌보기에 이른다. 그녀 뱃속의 아이는 그 여자의 아기이면서도 남편의 유전자를 받아 곧 태어날 새로운 생명체이다. 그녀를 사랑하고 보듬으며 돌보는 것은 곧 그녀 뱃속의 아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그 아이가 탄생하게 되어 세상을 헤쳐 나가게 되면, 그 아이는 곧 줄리에게서 받은 사람을 다시 세상에 되돌려 주며 살아갈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을 쏟는 것은 결국 그 아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줄리는 함께 살던 집을 처분하고 허름한 집을 구해 스스로 청빈의 삶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증오하던 여인을 사랑하고 부부의 계율에 어긋나는 불륜을 진정한 사랑으로 대체하고, 가진 것들을 버리고 정리하는 것은 결국 단순한 순정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줄리의 성찰이고 순정한 삶의 자세이다. 노자 도덕경의 상선약수의 물처럼 흐르는 곳마다 생명을 키워내고 베풂의 삶이기도 하다.

 

단순해질 때 비로소 세상이 바로 보인다

 

키에슬로브스키의 <세 가지 색 ; 블루>는 한 여자가 중요한 것을 잃은 뒤부터 깨달아 가는 과정을 순정한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한 사람에게 떳떳하게 자신의 사랑을 바치고, 남편의 정부에게 사랑을 쏟고 보듬으면서 새로운 생명체를 키워내며, 아울러 가진 것을 비워내는 순정의 삶을 통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들이 탄 차가 사고났을 때 지나가던 한 청년이 그녀를 구해준다. 나중에 그 청년이 수소문해 그녀를 찾아와 십자기 목걸이를 되돌려 주려고 하자, 그녀는 다시 가져가라고 받지 않는다. 이 장면 역시 은유적으로 사랑의 소중함을 나타낸다.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스스로 죽어간 예수의 삶을 은유한다. 줄 리가 그 청년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하는 것은 곧, 그 청년 역시 그녀처럼 세상과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정의 삶을 살아가라는 일종의 메시지에 가깝다.

이 영화 역시 블루에 가까운 물의 이미지처럼 단순하다. 그녀의 순정에 가까운 일상을 보여줄 뿐 설명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대한 인식과 이해, 즉 깨달음은 관객의 몫으로 돌려놓는다. 보여줄 뿐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 역시 인지외 이해, 그리고 실천을 관객의 몫으로 돌려놓는 열린 결말을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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