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가족에 들 무렵

By 황준성

'가족' 너무 쉬워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간단한 몇음절 뒤에 숨겨준 거대한 무게. 누군가는 말한다. 가족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타자들의 집합이라고. <철들 무렵>은 흉선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 철택, 무명배우의 고달픔과 그 아버지의 간병을 동시에 떠안은 딸 정미, 그리고 늘 희생을 강요받으며 자유를 꿈꾸는 어머니 현숙. 카메라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돌봄과 갈등, 이해와 성장이라는 가족의 결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가족을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할머니와 어린 조카 동민의 시선(이 글의 가족관계는 정미입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을 두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축 위에 인물들은 서로 다른 결핍과 한계를 드러내며 대조되는 이야기의 폭을 넓혀 나간다. 결국 이 영화는 다양한 삶의 결들을 병치하고 교차시키며, 다층적 구조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해 낸다.​


<철들 무렵>​의 내러티브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부녀관계라는 구심력과 가족이라는 원심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서사는 가족 간병이라는 구체적 상황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의 내레이션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삶 위에 포개어 놓고, 조카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 창처럼 기능한다. 이 두 축이 교차하면서 가족간의 동시대적 문제는 개인의 고통을 넘어 세대를 잇는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특히, 영화의 끝자락에서 조카 동민이 식물을 가꾸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 장면은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일이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는 상징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무거운 현실을 애수와 유머의 리듬 속에 녹여내는 연출력이다. 간병의 현장은 고단하고 절망적이지만, 영화 속 반복되는 웃음은 관계의 긴장과 고통을 잠시 풀어주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이어주는 접착제가 된다. 이러한 편집의 리듬은 영화가 우울에 잠기지 않도록 하고, 일상의 진폭 속에서 살아 있는 호흡을 만들어낸다.

특히, 병실에서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잠든 모습을 부감으로 담은 장면은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 침대와 간이침대라는 물리적 높이는 서로의 삶이 다른 무게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내지만,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잠든 부녀의 모습은 결국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환기시킨다. 요컨대, 삶의 어느 시점에서는 넓이보다 높이가 훨씬 더 의미심장해진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속에서는 그 높이의 차이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는 거리와 유대를 동시에 시각화하며, 가족이 지닌 모순적 본질을 인상적인 이미지로 선명히 드러낸다.

 

또한, 영화는 시작과 끝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한다. 철택의 집 입구에 균열된 벽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낡고 병든 삶의 은유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말부에 수리된 상태로 다시 소환되는 이 벽은, 가족 관계의 봉합과 치유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흉터는 사라지지 않지만, 뿌리칠수 없는 관계의 균열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가족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이다.

 

<철들 무렵>​은 누가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웃음과 풍자, 해학이 될 수도 있고, 조롱과 불편함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족의 돌봄과 갈등, 세대 간의 간극과 엇갈린 기억으로 인한 오해와 상처, 성장과 이해가 얽힌 다층적 서사를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타인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고통과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붙드는 힘을 배우는 과정임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운다.

앞서 언급한 병실에서 부녀를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이미지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간극 속에서 피어나는 유대의 가능성까지 비춰준다. 이 장면의 상징처럼 <철들 무렵>​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은 무엇으로 이어지고, 또 무엇으로 갈라지는가.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제 우리는 ‘가족에 들(다) 무렵’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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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다] - 동사

1.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거나 하다.

2. 빛, 볕, 물 따위가 안으로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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