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포풍추영(捕風追影)”이란 제목을 대하니 예전에 한참 중국영화 보던 때가 생각이 났다. 유독 네 글자 제목이 많았기 때문이다. 맹룡과강, 용쟁호투, 용문객잔, 소오강호, 천녀유혼, 영웅본색, 동사서독, 중경삼림, 동방불패, 비정성시, 동년왕사...... 처음엔 이소룡의 권격영화 생각이 나더니 왕우의 무협영화 생각도 나고, 그것과는 결이 다른 왕가위 영화나 허우샤오시엔 영화까지 그런 느낌의 제목은 끝이 없다. 그만큼 <포풍추영>이란 제목은 발음은 좀 어려워도 생김새가 레트로 감성을 북돋우는 맛이 있었다.
<포풍추영>은 그런 제목에 어울리는 배우들이 등장하기에 더 관심을 끄는 면이 있었다. 성룡과 양가휘가 그들이다. 요즘은 영화 정보를 그다지 살펴보지 않고 가다 보니 이 영화에 두 사람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부모나 상사나 선생쯤으로 나오겠거니 정도로. 그런데 알고 보니 바로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특히 성룡 같은 경우, 예전 같은 액션을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예전의 톱스타 두 사람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걸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활약을 보면서 정말로 놀랐다.
이 영화는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보았는데, 상영 전에 게스트 인사가 있었다.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출연한 배우 두 사람인 양가휘와 문준휘였다. 이미 가수로서 유명한 문준휘에게 보내는 젊은 관객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하지만 양가휘에게 보내는 갈채도 그에 못지않을 정도여서 그것에도 놀랐다. 영화제라는 분위기를 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관객들의 큰 환호에 게스트의 역할 마저 충실하게 수행하려 노력하는 양가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팬들의 갈채에 응답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명배우란 타이틀도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포풍추영>은 재미있는 영화였다. 유명한 배우들을 앞세우긴 했어도 그들이 통하기만 바라고 찍은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경찰과 갱단의 대결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데, 그 장면을 보며 느낀 첫인상은 <미션 임파서블>과 닮았다는 점이었다. <미션...>의 주인공들이 해내는 장면을 이 영화에서는 갱단 즉 악당들이 해내고 있었다. 그러니 대단한 빌런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示唆)하며 시작한 셈이다. 아울러 그들의 보스인 푸룽성(양가휘)의 실력이 드러나면서는 도대체 누가 저들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빌런의 이미지는 강했다. 이에 반해 경찰 측은 갱단 측에 당하고 시작해 놓고도 그중에서 제일 빈약해 보이는 여경 허추궈(장쯔펑)와 보기에도 오래된 은퇴 경찰 황더중(성룡)이 초강력 빌런들에게 맞설 중심이라니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져 보이는 운동장에서 놀아야 할 판이었다. 그런 출발점에서 결과가 나타나는 종착점으로 가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노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였다.
영화 시작 후 늙수그레한 은퇴 경찰 황더중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끊임없이 쫓고 쫓기고 치고받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그런 과정에서 놀란 건 성룡과 양가휘의 열연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며 조언하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일단 두 노배우의 끊임없는 등장에서부터 아연했다. 극단적인 선과 악의 중심에 서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배우들의 고생이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성룡은 진지함 속에 그의 특기인 웃음을 은근히 집어넣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추억어린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특기인 코믹해 보이는 무술 장면 역시 그때 그 시절이 연상될 정도는 재현함으로써 미소를 짓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점입가경으로 양가휘는 엄청난 빌런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작정을 했는지 열연을 보여준다. 중국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한 표현을 감안하더라도 지독하고 무서운 빌런 캐릭터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펼쳐 보였다.
<포풍추영>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노배우들의 열연을 기대하라는 말로 답하고 싶다. 활기찬 그들의 모습을 신작 영화에서 접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모습은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후기 영상에서 보았다. 성룡의 영화에서 본편이 끝나고 엔딩 타이틀과 함께 나오는 NG 장면들 말이다. 이 영화도 예전 것과 비슷하게 그런 장면을 흘려보내지만 조금 달라 보였다. 예전 같은 액션을 해낼 도리 없음을 드러내는 성룡의 말 한마디 때문에 그리 느꼈나 싶기도 하고. 그 와중에 한 장면이 방점을 찍었다. 영화 속에 황더중과 푸룽성이 술잔을 나누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찍다가 벌어진 일이었나보다. 정말 둘이서 한잔하고 그랬을 것 같은 분위기로 두 노배우가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그냥 먹먹했다. 또 이렇게 같이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으로 보였다. <포풍추영>에서의 그들의 열연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최고의 쿠키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