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정말이지 제멋대로인데다가 자기밖에 모르고 한없이 가볍기만 한‘오빠’라는 존재가 한 줌의 재가 될 처지가 되어 나를 찾아왔다. 한동안 교류가 없던 오빠의 소식을 알리는 갑작스러운 전화, 뜻밖의 부고 소식. 에세이 작가‘리코’는 오빠를 만나기 위해 오빠가 살던‘도호쿠’지방으로 4박 5일간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소설 <오빠가 죽었다>를 원작으로 각색되어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로 찾아온 일본 영화 <오빠를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로>는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인식의 오작용과 자기 주관성에 대해 고찰한다. 기억은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내가 판단하고 싶은 대로 판단해버리기 일쑤.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편애를 받아온 주인공‘리코'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오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란다. 암 말기에 놓은 엄마를 버리고 도망을 가질 않나, 장례식장에 와서 조의금 삥을 뜯어 가질 않나,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내세우며 돈을 요구하질 않나.. 정말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노답 케이스다. 사라져 버리지 않으니 피하기를 선택한 ‘리코’는 오빠의 어떠한 연락에도 응수하지 않고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가족 리스트에서 존재를 지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빠의 갑작스런 사망사건 이후 오빠가 살던 집을 찾게 되면서 시야에 가려져 있던 오빠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아닌,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부활하려 했던 사람. '오빠'
철부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뒷모습에서도, 이혼을 선택했지만 애틋한 마음만은 간직한 전 부인의 울먹임 속에서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자신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딸의 모습 속에서도 '오빠'의 존재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얽히고설켜 미쳐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을 직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우리는 그 모습을 마주하며 자가치유하듯 '용서와 회복'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말해야 하지만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도 있다는 것!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족의 무게' 또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일본식 유머와 개그 코드, 그리고 색다른 장례 문화 등은 낯설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과 가족 간에 발생하는 애증의 키워드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 굳건히 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은 영화 <행복 목욕탕>,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이 일본 특유의 가족애를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너무 잔잔해서 또는 너무 묵직해서 불편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2시간의 러닝타임이 3시간처럼 느껴지는 무료함과 불쾌한 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나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며 켜켜이 쌓아온 서사들의 감정이 폭발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49세가 되어버린 중년이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농익은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청춘스타에서 시작해 이제는 나이 들어 자녀를 키우는 부모역을 연기하는 중년 배우의 무게 또한 느껴진다. 영화 중간중간 오다기리 죠의 뜬금없는 등장 씬들은 김초희 감독의 한국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거워졌다가 실소가 터졌다가, 암울했다가 다시 밝아지는 조증과 울증을 오르내리는 영화의 연출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래도 나름 즐겁게 연출하려는 감독의 노력처럼 보여 귀엽기도 하다.
오빠의 유골함을 안아든 것처럼 조금은 나른해지게 만드는 뭉근하게 따듯한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관 입장 전, 팝콘을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 자칫 잘못하면 졸릴 테니까! 슬슬 내려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뎌내는 자만이 이 영화를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