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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카게 시립 수영장> :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수영장이 아니다

By 서은희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70년대에 태어나 52년 동안 살았다. 처음 개장했을 땐 그 인기가 어마어마해서 지하철역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단다. 후쿠오카에 만든 인공 해변인 모모치 해변보다 어쩌면 훨씬 더 급진적인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70년대를 생각해 봐도 그땐 흑백사진, 흑백 텔레비전 정도이니, 놀이시설로는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시립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재했을까. 혹은 시립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영장을 철거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市長이 나와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의 철거를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만 보더라도 시민들의 감정 혹은 분노의 표출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영화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대단히 영특한 영화다. 사실 52년이나 먹은 시립 수영장 철거를 놓고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그야말로 왕년에 한가락 했던 노병의 지난 세월을 담은 일종의 기록물 수준으로 끝날 뻔했을 것이다. 막말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을 의인화시켰다면, 70년대, 80년대까지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스스로 노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히 그 시대의 일본도 야외 놀이시설이 마땅찮았을 것이다. 궁리 끝에 실내 수영장이라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었으리라. 80년대만 되었더라도, 매립이니 해서 인공바다라도 만들었겠지만, 70년대가 아닌가. 이제는 디즈니랜드조차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52년이나 버틴 시립 수영장 하나가 철거되는 게 시 입장에서는 뭐 대수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의 반대에도 과감하게 깨부쉈을 것이다.

 

감독 오타 신고는 대단히 영특한 사람이다. 그는 상당히 비상하게도, 시립 수영장의 철거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만든 슬픔의 5단계를 물고 왔다. 지난 세월 동안 별 탈 없이 이용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슬픔을 받아들이기까지의 5단계를 영화 속에 지혜롭게 박아놓고 서사를 움직였다.

 

시민들의 만류에도 시에서는 결국-혹은 처음부터 철거만이 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시립 수영장을 철거한다. 만약 52살의 시민이 있었다면, 그 시민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을 이용했을 것이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과 나이가 같은 일반적인 시민은 단순히 물놀이용 공간의 사라짐보다도 훨씬 큰 상실감을 맛볼 것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뿐만 아니라 청년, 중년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감정을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과 나눴을 것이다. 실제도 감독 오타 신고는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의 철거와 맞물려 그 수영장을 이용한 다양한 계층의 이용도를 영화의 한 축에 매달아 놓았다. 마치 논픽션과 픽션이 맞물려 묘한 자극을 불러 모은다. 마치 논픽션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의 유쾌함이 이 영화의 색다른 묘미다. 오타 신고 감독의 코미디적 발상이 단순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단순히 여름 한때 물놀이용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영장 철거와 주변인들의 사적 이야기가 동거함으로 인해 뉴스용 이야기에 그칠 시립 수영장 철거물은 뉴스 이상의 생각 혹은 가치를 보게 만든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그곳을 그 누가 어떤 용도로 활용했든지 간에, 다양한 욕망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내재한 욕망은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의 욕망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에 가라앉아 그 공간을 지켜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더위에 지쳐 물에 뛰어들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돈을 벌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만남을 위해 수영을 했을 것이다. 공간은 그런 것이다. 입장에서는 단순히 더 큰 용도가 생기면, 철거 대상이 되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쉽게 철거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공간 속에 항상 경험과 기억이라는 축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망이 틀어지면, 변화가 생긴다. 같은 욕망일 때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건재할 수 있었지만, 다른 욕망이 들어가면 욕망끼리 싸우고 흩어진다. 구심점을 잃어버리게 되면 욕망도 사그라든다.

 

영화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다큐멘터리의 질서 속에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욕망을 심어 놓고 미끼를 던진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52살 먹은 중년의 시립 수영장을 그냥 철거 대상에 넣기엔 사람들의 욕망이 어마어마했다. 아주 영리한 오타 신고 감독이 만들었기에,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의 철거는 TV 뉴스 대신 극장에서 철거 소식을 전한다. 성난 시민들과 아쉬워하는 시민들, 향수에 젖은 시민들과 사랑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여러 감정이 요동친다. 그래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수영장이 아니다. 하지만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수영장이 맞다. 그런데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수영장이 아닌 것이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욕망이다. 사람들이 던져 놓은 욕망을 그대로 안고 52년을 버티고 그 자리를 지켰다.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고 했거늘.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많은 사람의 욕망을 안고 다양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래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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