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사이타마 시에 위치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52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시민에게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준 곳이다. 시는 그런 수영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학교를 지으려 한다. 철도 건설 후 몰려드는 주민으로 인해 인근 학교가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이 수영장을 허문다는 걸, 학교가 지어지는 걸 모르는 상황. 이제 수영장에 남은 수명은 49일뿐이다.
영화는 수영장이 헐리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여명(餘命)으로 표기한다. 여명이란 일반적으로 생명이 있는 존재에 숨이 붙어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사물의 사용 기한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나,
그 용법도 전구나 자동차 등 소모품에 한정된다. 애초에 정해진 수명이 없는 건축물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런데도 영화는 철거까지 남은 기간을 여명으로 표기하며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대한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생명을 부여받은 수영장과 시민의 마지막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된다.
남은 수명이란 단어는 영화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과 함께 또 하나의 의외성을 부여한다. 남은 시간이라는 설정은 보통 극적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폭발물이
터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자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사용법을 고려한다면, 수영장에 남은 49일도 마지막 기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민행동으로 시의 결정을 뒤집고 소중한 수영장을 지켜내기 위한 데드라인으로 말이다.
영화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수영장이 헐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시설 앞에 놓인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시민이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영장이 그에게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키는 데 그칠 뿐이다. 수영장에 남은 시간이 49일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즉, 수영장은 시한부 삶을 살아갈 처지에 놓인 셈이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수영장을 없애려는 시에
분노하든가, 비탄에 빠지든가,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든가. 시민은 세 번째 선택지를 고른다. 그리고 감독은 그 시간을 기록해
나간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49일간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민의 시간을 기록해 나간다. 그곳은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었다. 바다 없는 도시의 시민에게 물이란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가족은 그곳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았고, 아이는 친구와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직원은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사랑을 쌓았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소중한 쉼터이자, 수십만
명의 사람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공간이다.
오래된 공간이 사라지면 인간은 그곳을 추억으로 기억한다. 근처를
지나가다 문득, 아 여기 그게 있었지, 하며 추억에 빠질
수도, 일상에서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그 추억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점점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져가는 데다 개인의 기억이 갖는 지속력엔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아무도 그곳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그렇지 않을 테다. 분명 수영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의 모래바람에 묻힌 다른 기억처럼, 수영장과
함께 한 시간은 세월이 흐르며 희미해질 것이다. 누마카게 수영장이 다른 공간과 다른 점이라면, 카메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52년간 시민의 곁을 지켜온 수영장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다. 카메라에 포착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영화를 틀면 그곳에는 21세기의 어느 순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 영화가 존재하는 한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이란 장소는 절대 잊히지 않을 테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52년 간 한 자리를 지켜온 한 수영장과 시민의 관계를, 그 추억을 기록한 저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