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집 앞에 조금만 가면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야외 수영장이 있다면?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은 채 수영하고 갓 튀긴 치킨을 뜯은 후, 해가 질 때까지 놀고 푹 잠들었을 하루가 상상된다. 생각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일본 사이타마 시는 부산과 달리 바다가 없고 강 수질이 물놀이에 적합하지 않아 야외 수영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52년째 시민들에게 많은 호응과 꾸준한 인기를 얻어왔다. 어느 날 수영장을 철거한다는 비보가 날아온다.
시에서 공공교육의 공간 건립을 위한 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이후의 5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프레임에 끼워 각각의 에피소드가 있는 듯 전개된다. 예상보다 철거를 막는 시민,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 무거운 대립 등의 요소가 적다. 별문제 없이 운영하던 공간을 갑작스럽게 철거한다는데, 반발 심리가 이렇게 적다 못해 평온해도 되는지 의문이 밀려온다. 어차피 수영장 철거는 정해진 순서라는 건가. 인공호흡기를 뗀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죽을 날을 확정받고 기다리는 시한부 같다.
영화는 이슈에 시민들에게 가지는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의 의미가 가려지는 것을 걱정한 듯하다. 사라지기 직전의 일상을 잔잔하게 비추면서 표면적으로 슬픔을 적게 표현했다. 반응은 드러내되, 갈등은 절제하였다. 수영장의 하루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직원, 관계인과 손님에게 초점을 둔다. 철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수영장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평소와 똑같이 운영된다. 구조요원은 이용객들을 예의주시하며 안전에 신경 쓰고 있고, 직원들은 상시 청소 및 관리를 하고 있다. 수영장만큼 세월이 흐른 슈퍼마켓 사장님은 아직 그대로 계신다. 수영장에는 귀여운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인 풋풋한 학생들, 열심히 훈련하는 수영선수와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등이 방문한다.
수영장을 자주 찾는 사람 중에 성적 취향이 일관된 남자가 있다. 그의 일상이 불쑥 들어온다. 중년의 나이에도 천진난만함 있는 듯한 아들과 비쩍 마른 어머니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그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만, 뭔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는 수영장에서 자신과 비슷한 남자를 만나 대화하고 초대하기도 한다. 논점을 비켜선 흐름은 주제가 주는 무거움을 완화한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를 아쉬움이 낮게 깔린다.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단순한 물놀이 장소 이상으로 사교, 힐링 등이 이루어지는 시민 공간 자체였다. 그곳이 무너지는 모습을 끝내 지켜보지만 허망하지는 않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이 보일수록 자신의 잊고 있었던 추억 장소도 하나둘씩 떠오른다. 공간을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면, 영원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살아가면서 지쳐있다면, 한 번씩 눈을 감고 오묘한 하늘색 워터 슬라이드를 신나게 타고 날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