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세상은 이상함 투성이다. 이해 못 할 사람도 주변에 가득하고, 나와 결이 맞지 않은 사람도 많다. 가장 힘든 건 이곳에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세계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오류가 있고 다른 세상으로 가서 내가 원하는 사람과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김덕중 감독의 <트루먼의 사랑>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재 트루먼쇼 영화 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영화 밖으로 나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지연이 <트루먼쇼>의 트루먼이라고 확신하는 순간은 에러를 발견할 때이다. 영어가 솰라솰라 들리면 트루먼을 제외한 모두가 오류라도 난 듯이 이상한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멈춘다. 그리고 박수 소리가 짝하고 나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모두가 움직인다. 마치 정말로 트루먼쇼 영화 안에 내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 시간은 짧으면 5분 길면 30분까지 지속된다. 영화 속에는 트루먼, 라이어(트루먼이 아닌 자), 트루먼이었다가 라이어이다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 트루먼이지만 라이어인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모든 이야기는 트루먼 지연, 현식, 문성의 시점으로 흘러가지만,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이길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건지 고민하게 한다.
그들의 차이점은 단순하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뿐이다. 현식이 지연을 만나고 난 9개월 뒤 자신이 트루먼이라는 걸 인식했고, 지연이 문성에게 자신은 현식도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때, 문성은 뉴질랜드로 가는 걸 포기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을 둘 곳은 딱 두 가지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그 누구와 어디서 살아갈 것인가.
지연이 마음에 둔 건 동질감, 현식은 여자, 문성은 정보, 희선은 재미로 보인다. 현식이 지하철에서 지연을 만나 헛소리를 듣고 그녀를 인식했을 때 그때부터 신경 쓰여 매일 생각하다가 트루먼이 된다. 지연은 자신 외에 유일한 트루먼 문성을 만나 동질감에 사랑에 빠졌고, 현식을 만나 자신을 열렬히 지지해 주는 모습에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성은 이미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지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하는 걸 포기했을 때, 희선을 만나 괴로움을 토로한다. 희선은 그런 그를 가스라이팅해 자신에게 빠지게 만들거라고 말한다.
또한 지연은 에러가 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지만 희선은 오히려 즐긴다. 그 세상에서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적응해 나간다. 세상은 에러가 나지 않아도 언제나 이상하다. 그 세상을 떠나고 싶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이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뉴질랜드는 그런 꿈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이곳 대한민국은 트루먼쇼의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에러 속에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 항상 존재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지연과 문성, 현식이었다. 문성과 현식의 차이점도 단순하다. 누가 더 지연과 생각이 비슷했는가. 혹은 더 지지했는가. 문성이 희선이라는 또 다른 동지를 만났을 때 아마 비로소 문성이 이 에러 난 세상에 적응하고 살 수 있는 마음 둘 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게 비록 알게 모르게 가스라이팅스럽더라도.
김덕중 감독의 <트루먼의 사랑>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다시 말해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모든 걸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트루먼들, 소수다. 영화를 봄으로 우리는 누구를 왜 사랑하며, 이 땅에서 어떤 이유로 살아갈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이유가 우리를 구성하는 방식이며, 더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