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흐르는 여정> : 투쟁이 아닌 수용으로

By 전세현

 영화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우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추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반면 <흐르는 여정>에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그들은 울고 화내기보다 웃고, 서로에게 다정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다.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만나며 행복을 찾고 상실을 극복한 것만 같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 전반에 깔린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흐르는 여정>은 분명히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의 영화이다. 어떻게 영화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격정적인 감정에 휩쓸린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또 그러한 의연한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영화는 실의에 빠진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는 편리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의 음악을 깔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들려준다. 또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으로, 방 안에 도는 술 냄새로 슬픔을 표현한다. 많이 사랑하던 남편을 잃은 춘희는 비가 오는 날이면 차로 향해 음악을 듣는다. 운전할 줄도 모르는 춘희가 매일같이 닦으며 소중히 여기는 차는, 비가 오는 날이면 애도의 장소로 변한다. 춘희는 그 안에서 음악을 튼다. 빗소리가 차를 두드리고, 부드러운 음악이 들린다. 음악은 점점 커지며 이내 빗소리를 지워낸다. 차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듯한 공간 속에서, 현실은 멀어지는 것만 같다. 영화는 춘희가 투석받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투석실이란 붉은 표지판만 보여준다. 춘희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감정에 과도하게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의 배경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 지나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는 내레이션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자연의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새소리, 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물소리, 파도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춘희와 민준이 절에 가 삼배를 드리는 장면 다음에 춘희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위로는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있다. 춘희가 지겹다고 말하며 약을 먹는 장면에서, 영화는 그녀의 모습은 창문에 비추어 보여준다. 춘희와 창밖 나무가 겹치고, 창밖 나무들은 흔들린다. 춘희, 민준, 성찬이 공항에 다녀온 다음 바닷가에 차를 세워둔 장면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다. 상실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리, 이미지를 보고 있다 보면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 속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또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사람은 슬픔을 배경에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준이 종일 웃지만, 그의 방 벽지와 그림이 푸른 계열의 색인 것처럼 말이다.

 

 <흐르는 여정>은 상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그로부터 오는 슬픔을 과잉 시키기보다 잔잔하게 보여준다. 춘희와 민준 모두 깊은 곳에서 슬픔이 배경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슬픔이 당연하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가 있다. 그것이 유별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통해, 보는 이 역시 슬픔을 의연한 태도로 바라보게끔 돕는다. 상실의 앞에서 밀려오는 슬픔과 투쟁하기보다 그저 그것을 듣는 일, 바라보는 일. 영화는 그러한 마음가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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