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이제한 감독의 영화는 열고 닫음이 분명하다. 전작 <환희의 얼굴>에서 그러했듯 과연 이번에도 그러할까. 기대감 속에 프로그램 노트를 펼쳐본다. 중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영화의 내용은 시한부의 삶과 남겨진 자의 삶으로 나뉘어 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시나리오에 특별함을 더하는 것은 시한부가 영화감독이고, 남겨진 자가 고민하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적인 시도를 하지 않을까, 기대를 머금으며 <다른 이름으로>의 문을 열어보자.
아이리스 효과로 문은 열린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제현(문인환)은 영화감독이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아내 수진(정회린)과 다 쓰기에 부족할 텐데, 제현은 친구 지영(황미영)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시도를 수진이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다. 영화에 대한 제현의 열망을 무서울 정도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부지런히 시나리오를 가다듬고, 배우와 미팅을 가지며, 대본을 맞추어본다. 여기서 대충이란 없다. 영화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은 아내 수진에게 들키면서까지 꺾이지 않는다. 그 열정에 감복하기라도 한 듯, 회복의 여지를 남기며 1부가 끝을 맺는다.
2부는 1부의 끝을 장식한 회복의 여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남겨진 자의 이야기로 빠르게 흘러간다. 수진은 남겨졌고, 마찬가지로 남겨진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그녀의 추모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제한의 열정처럼 뜨겁지 않고, 제한의 집착처럼 집요하지 않은 수진의 결심은 뻔뻔한 배우 종훈(문인환) 덕에 쉽게 무너진다.
같은 얼굴의 다른 역할은 익살스럽게 느껴지지만, 전혀 다른 성격 탓에 위화감이 없다. 장소도 달라지지 않는다. 1부와 2부의 톤앤매너가 분명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다. 보고 있다 보면 두려운 죽음이 재밌게 느껴질 지경이다. 영화에 녹아있는 유머는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유려하게 흘러가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다시 아이리스 효과로 문이 닫힌다.
<다른 이름으로>는 이제한 감독의 영화답게 여전히 열고 닫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진일보한 성장이 엿보이는 지점은 이음새다. 톤앤매너가 달라지는 1부와 2부 사이가 매끄럽다. 익살스러운 장치가 허무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연출의 걸출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부드럽게 시작해서 거침없이 닫히는 <다른 이름으로>는 관객과 영화를 자연스럽게 잇는다. 저도 모르게 이어진 관객은 영화와 정답게 어울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