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흐르는 여정> : 춘희를 알게된 우리는 참 복 많은 사람

By 임수진

존엄사 (尊嚴死) :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견해.

 

최근 몇 년간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존엄사문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2002년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존엄사를 합법화 했고, 그 뒤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에서도 네덜란드와 비슷한 수준의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외국인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어 존엄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영화<흐르는 여정>60대의 춘희가 존엄사 결정하고 스위스로 떠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각보다 먼저 떠나버린 춘희의 남편 현철은 화면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춘희가 들려주는 이야기, 춘희의 일상을 통해 남편이 평소 얼마나 다정했는지, 춘희와 남편과의 관계가 얼마나 애틋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는 춘희가 남편을 떠나보내고 평생을 함께 살아온 집을 떠나 어느 아파트로 이사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남편이 아끼던 그랜드 피아노를 집에 옮기는 게 쉽지 않고 우연히 만난 이웃 주민 민준의 제안으로 피아노를 그의 집에 두게 된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알고 보니 민준은 어릴 적 독일에 입양되어 지금껏 독일에서 자라나 꽤 유명한 지휘자가 되었고, 지금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친엄마를 찾고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피아노'이라는 매개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성찬. 민준이 가르치고 있는 제자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부모님도, 친척도 없어 혼자 살아가기도 벅찬 아이다.

춘희의 일상에 이 세 사람의 사연이 더해지며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 그저 흘러간다. 그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흐르는 여정'이라는 제목이 너무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영화를 잘 표현할 순 없으리라.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은

 

영화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과 그리워하는 법을 그리고 있다. 말하진 않지만 춘희는 남편을, 민준은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성찬과 또 많은 이들은 춘희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영화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춘희에게 남편은 화분이었고, 그의 자동차였고, 그랜드 피아노였다. 그래서 춘희는 화분을 가꾸고 아끼며, 매일 그랜드 피아노를 닦고 혼자서 힘든 세차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왜 그렇게 매일 피아노를 닦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민준의 질문에 춘희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이 매일 세수하고 씻듯 이렇게 매일 닦아주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그저 무언가를 닦고 가꾸고 남편과 함께 듣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 숨 쉼이 느껴지는 것 같다.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깊은 울림이 있다.

민준은 엄마를 만날 날을 그리며 음악을 했고 또 한국말을 익혔다. 그가 한국 음식과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그가 얼마만큼 엄마를 그리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성찬에게 부여된 그리움의 장치는 카메라와 사진이었다. 춘희에게 남편의 카메라를 선물 받았던 성찬은 틈틈이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다. 그녀와 함께했던 일상을. 사진이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기에 가장 탁월한 것을 꼽으라면 아마 사진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그 날을 더 생생히 기억하고 회상하게 되니깐.

영화 속에는 유독 비오는 장면이 많다. 비가 오면 더 감성적여지고 누군가를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비오는 순간, 춘희는 남편의 자동차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고 남편이 좋아하던 담배 한가치 올려두며 그를 그리워한다. 창문에 흐르는 빗물이 꼭 마음에 흐르는 눈물같아 춘희의 마음이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 아름다운 춘희의 멋진 인생

 

춘희가 남편을 떠나보낸 이후만을 보고 있지만 춘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때론 춘희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춘희가 참 멋진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웃주민과 인사 나누기도 어려운 삭막한 아파트지만, 어릴 적에는 이웃집과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서로의 소식에 관심가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이였던 기억이 있다. 시장을 다녀오는 길, 다리가 아파 차디찬 아파트 계단에서 앉아 쉬는 할머니를 보며 춘희는 자신의 의자에 예쁜 방석까지 올려 그 자리에 놓아둔다. 반상회에서는 비오는 날 다쳤다는 미화원을 의심하며 오로지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입주민의 모습에 춘희는 본인 혼자 복도 청소를 도맡기로 한다. 그런 춘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따뜻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춘희의 여정이 외롭게 느껴지지 않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춘희의 삶을 다 알진 못하지만 60대의 춘희는 참 멋진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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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담담하게 흐르는 123분의 러닝타임이지만 그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전혀 단조롭지 않다. 때론 웃음과 미소가 나고 때론 흐뭇하고, 또 먹먹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스위스라는 지명이 반복되는 순간 사실 예감했다. 우리는 춘희와 작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춘희의 남편이 작곡하고 민준이 완성시킨 음악이 민준의 콘서트에서 처음 공개되는 장면이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점점 고조될 때면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춘희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아 너무 아름답고 마음이 먹먹했다. 그리고 춘희는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흐르는 여정>이 꼭 존엄사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60대의 춘희를 통해 본인의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자 함도 있지만, 늘 고민스럽고 답을 내릴 수 없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는 결국 스스로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꼭 거창하고 화려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의 가치는 평범함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화의 마지막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주세요라는 그 한 문장이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걸 무너뜨리고 꼭 광고처럼 느끼게 하는 듯해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춘희의 선택은 존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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