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영화적 시?청각성을 새삼 환기시키는 [줄 앤 짐]의 ‘묵시록적 버전’이랄까.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는 대조적이다. 트뤼포의 걸작이 주인공들의 자유분방한 삼각관계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며 역동적 톤으로 흐르는 데 반해, 영화는 지극히 정적 톤을 견지하면서 인물들의 관계 못잖게 인물들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 환경 등을 포착, 묘사하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지구 종말 이후, 엘로디와 엘리아스는 평화로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청년 가브리엘이 나타나면서 그들 관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언뜻 자극적 삼각 드라마로 흐를 듯도 싶으나, 영화는 철저히 미니멀리즘적이며 복고적으로 일관한다. 개별 인물은 물론 세 인물의 관계 묘사에서 특히 더. 인물들은 좀처럼 대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말이 아닌 최소한의 몸짓, 표정 등으로 표현된다. 카메라는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서 인물들을, 그 인물들이 자리하거나 텅 빈 공간을 응시하곤 한다. 미장센은 물론 조명, 음악효과 등도 미니멀리즘적? 복고적 스타일에 완벽히 부응한다. (전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