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아버지의 방> : 쓸모없음의 쓸모, 삶을 지탱하는 ‘무용(無用)’의 가치

By 박정현

  숫자가 문자보다 앞서고, 실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앞세운 영화에 마음을 내어주고, 미술관을 찾아 예술을 마주하며, ‘텍스트힙’이라는 새로운 열풍 속에서 다시 책을 펼쳐 든다. 효율과 실용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왜 우리는 여전히 찾는 것일까. 어쩌면 그 답은 ‘쓸모없음의 가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고 당장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 무용해 보이는 것의 가치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하라다 마하’의 첫 장편 영화 <아버지의 방>(원제: 無用の人)은 바로 그 지점을 바라본다. 효율과 실용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쓸모없는 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삶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감독은 차분히 그려낸다.


  영화는 다도를 영상으로 배우는 주인공 ‘사토미’의 모습을 비추며 고요하게 문을 연다. 다도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음은 극이 전개되며 드러난다. 미술관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는 사토미에게 어느 날 날짜 지정 우편이 도착한다.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보낸 생일 선물이다. 봉투 속에 든 낡은 열쇠를 시작으로 사토미는 그간 관계가 소원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린다.

 사토미의 부모는 오 년 전 황혼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물음에 엄마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한 사람”이라 답한다. 돈을 벌어오거나 가정의 안정을 건실하게 지키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 사토미의 기억 속에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가족을 배웅하던 모습만 남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먹고사는 일에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의 눈에 '무용'하게 비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간 한 인간의 궤적을 따라가며, 삶을 지탱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묻는다.

 고독사한 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통해 멀어진 세월 동안 미쳐 알지 못했던 흔적을 되짚던 사토미는 다완(주로 말차를 개어 마시는데 쓰이는 찻잔)을 구매한 골동품 가게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전문적으로 다도를 배운 적은 없지만 평생 다도를 사랑했다. 차를 마시는 결과보다 차를 준비하고 우려내는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아낀 사람이었다. 이러한 성정은 골동품 가게에서 이상적인 다완을 만난 순간을 기억하고자 허공에 손을 놀리며 차를 내리던 ‘에어 다도’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소 괴짜 같지만, 자연스러운 손 모양에는 오랫동안 다도를 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기품이 묻어난다. 아버지는 시를 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도 보통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창문’ 또한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다. 극 중에선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는 마치 거대한 창문과도 같다는 대사가 등장하며, 영화의 마지막 역시 창문과 연결된다. 또한 아버지가 남긴 시에는 ‘책을 여는 것은 창문을 여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이 스친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고, 시를 읽고, 무용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는 행위는 어쩌면 닫혀 있던 내면의 창문을 여는 일이다. 영화는 당장의 생존에 바빠 우리가 무용하다고 지나쳐버린 것들이, 사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결정하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사회적 명함 한 장 변변히 내세울 수 없고, 자신 무엇이라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던 ‘무용한 사람’이었던 아버지. 하지만 사토미는 아버지를 향해 ‘시인’이라고 명명한다.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삶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에 딸이 비로소 하나의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제야 깨닫게 된다. 무용함은 결코 쓸모없음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사토미에게 무용하지만 가치있는 것은 그녀가 일하는 미술관이다. 사토미는 15년 동안 미술관에서 일했지만 미술을 전공한 정식 큐레이터도 아니고, 동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도 아니다.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토미에게 미술관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그곳은 수많은 인연이 이어지고 다시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영화는 작품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행위보다,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한다. 어린 시절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통해 미술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된 사토미, 그리고 사토미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은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서로 엮어내는 끈이 된다. 어쩌면 그 연결의 과정 자체가 삶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오페라 아리아 'Casta Diva(정결한 여신이여)'는 전쟁을 앞두고 달을 향해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다. 달에게 기도한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도, 당장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효율의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행위다. 그래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어 왔다. 아버지가 차를 우리고 시를 쓰던 시간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쓸모가 없기에 오히려 삶에 필요한 것들, 삶을 지탱하는 진짜 기둥은 결국 우리가 어떤 가치에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비로소 완성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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