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베드포드 파크> : 숨, 쉴 곳

By 김희선

부모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딸과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남자가 교통사고를 계기로 만난다. 스테파니 안의 〈베드포드 파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함께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평범한 시간에도 이들은 선뜻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영화는 그 머뭇거림을 오래 바라보며, 누군가의 곁에서 마음을 놓는 일이 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계 미국인 오드리(최희서)는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내지만 부모의 기대 앞에서는 충분한 딸이 되기 어렵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도 부모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을 품고 있던 오드리는 엄마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일라이(손석구)를 만난다. 열 살 무렵 미국으로 입양된 일라이에게도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려웠던 시간이 있다. 차별과 경제적 제약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기회마저 좁혀왔다. 살아온 사정은 달라도 상대를 알아가기 전에 자신부터 지키려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하고 멀어지려다가 다시 다가선다.

 

어떤 감정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몸에 남는다. 영화 초반 헤드셋을 낀 오드리는 마치 방호복을 단단히 껴입고 바깥의 모든 것을 막아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 긴장 속에서 관객은 오드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 삶이 남긴 무게부터 느끼게 된다. 말을 듣다가 굳어지는 표정과 누군가의 접근을 경계하는 자세에는 지나온 시간이 배어 있다. 영화는 그 얼굴과 몸짓에 가까이 다가가 인물들이 말로 꺼내놓지 못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눈길을 끄는 것도 듣는 얼굴이다. 카메라는 나란히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밥을 먹는 두 사람을 양옆에서 번갈아 비추면서 말하는 사람을 흐리게 두거나 얼굴을 프레임 밖에 남겨두고 듣는 사람의 표정에 집중한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얼굴에 시선이 머물면서 말의 내용만큼이나 그 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해진다.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이들을 지켜보는 동안 관객 역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타고 가던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추자 오드리는 라디오를 켠다. 채널을 돌리다 〈록키〉의 주제곡이 흘러나오자 일라이가 그 음악을 듣겠다고 반응을 한다. 일라이는 마치 지휘라도 하듯 몸을 움직이고 그 모습을 힐끔 보던 오드리도 어느새 음악에 빠져들어 눈물을 보인다. 그러는 사이 신호가 바뀌고 차는 다시 출발하지만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도 서로의 감정을 묻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둘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마음에 온전히 잠기고 설명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그 자리를 나누는 것이, 이들에게는 그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비로소 숨을 내쉬고 바짝 긴장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후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한다. 일라이의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몸을 움직이는 동안 오드리는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삼킨다. 그러나 그 얼굴은 잔뜩 굳어 있던 처음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상대가 살아온 시간에 깊이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그 무게를 다 헤아렸다고 함부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존중처럼 느껴진다. 최희서 배우는 감정을 누르는 비슷한 표정 안에서도 서로 다른 마음의 결을 드러낸다. 자신을 지키던 오드리의 마음이 상대의 삶을 조심스레 헤아리는 마음으로 달라지는 과정이 최희서 배우의 얼굴에 담겨 있다.

 

〈베드포드 파크〉는 서로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어도 그 고단함을 받아줄 수 있는 관계를 그린다. 두 배우의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을 드러내는 일만큼이나 상대의 마음을 기다리는 일에도 눈길이 간다. 오래된 상처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함께 있는 동안 자신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 조심스럽게 다가선 서로의 곁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며 지친 몸과 마음에도 잠깐의 쉼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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