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미친 노인의 일기> : 어느 평범한 노인의 일기

By 강동휘

늙으면 마음도 함께 늙을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웨인 왕의 <미친 노인의 일기>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쓰기(릴리 프랭키)는 예순아홉 번째 생일 전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 왼쪽을 쓰지 못하게 된 뒤 죽은 아내의 자매인 하나와 며느리 수수(판빙빙)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낸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지만, 며느리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만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영화는 수수가 우쓰기의 재활 운동을 돕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돌봄과 유혹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순간을 따라간다.

 

영화를 끝까지 이끄는 힘은 두 배우의 연기다. 릴리 프랭키는 자칫 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고집 세고 우스꽝스럽다가도 금세 어린아이처럼 여려지는 우쓰기를 보며 관객은 어느새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내레이션에서 스스로를 초라한 늙은이라 비웃다가도 며느리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소년처럼 들뜬다. 그 속마음이 영화를 쓸쓸하면서도 유쾌하게 만든다. 판빙빙이 연기한 수수는 우쓰기와 정반대에 선 인물이다. 시아버지를 돌보는 손길은 다정하지만, 다가왔다가 물러서는 몸짓은 속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을 쥐고 흔드는 여유 뒤로 그녀 역시 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엿보이면서 수수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깊은 인물이 된다. 모든 것을 털어놓는 우쓰기와 끝내 제 마음을 감추는 수수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랜다.

 

두 사람의 관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언어다. 중국에서 온 수수는 일본어로 생활하면서도 때때로 중국어로 말을 건넨다. 원작의 며느리는 일본인이었으니, 두 언어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대화는 영화가 새로 더한 즐거움이다. 우쓰기는 그녀의 말뿐 아니라 목소리의 높낮이와 몸짓에서도 그 마음을 읽으려 애쓴다. 일본 가족 안에서 수수는 혼자 다른 나라 사람이다. 서로 다른 말 사이에 틈이 있기에 우쓰기는 그녀를 더 오래, 더 깊이 바라본다.

 

시선을 담는 빛과 그림자도 눈여겨볼 만하다. 초록빛 정원 쪽으로 커다란 창이 난 집은 탁 트였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얼굴과 몸은 자주 그늘에 반쯤 잠겨 있다.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인 밝은 공간과 어두운 얼굴은 드러내는 것과 숨기는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넓은 집에 우쓰기와 수수 단둘이 남게 되자, 멀찍이 서 있던 카메라가 한 걸음씩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만큼 둘 사이의 거리도 좁아진다. 모든 것을 환히 비추지 않는 화면은 다 말하지 못한 마음과 다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닮았다.

 

<미친 노인의 일기>는 야릇한 설렘과 웃음, 쓸쓸함과 다정함을 함께 품은 채 늙은 몸에 남은 욕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말을 쓰는 며느리에게 닿으려 애쓰는 우쓰기는 우습고 딱하면서도 끝내 눈을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늙으면 마음도 늙느냐는 처음 질문은 어느새 늙은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물음으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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