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우주의 흔적> : 저마다의 별이 저무는 밤

By 채수민

인간은 자신의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그 마지막을 맞이하는 방식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장우진 감독의 <우주의 흔적>은 두 연인 현지와 지현이 각자의 부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는 밤하늘의 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에서 들을 법한 몽환적인 음향이 반복된다. 이러한 낯선 감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감싼다. 저마다 다른 빛을 지닌 별들처럼 인간 역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현지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지현에게 죽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다가온다. 하나는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다른 하나는 준비하는 시간 자체를 고통으로 만든다. 영화는 이 상반된 시간을 나란히 놓으면서 죽음의 순간보다 그 주변에서 달라지는 일상에 주목한다. 갑작스러운 부재는 익숙했던 관계를 낯설게 만들고, 다가오는 이별은 무심히 지나쳤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는 현실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죽음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죽음을 둘러싼 선택의 문제로 나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과 그가 겪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은 때로 충돌한다. 이때 죽음은 한 사람의 생애가 끝나는 사건인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선택과 책임을 남긴다. 영화는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떠나간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이 겹겹이 쌓여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지는 감각은 영화의 시청각적 형식에도 발견된다. 영화에서 디졸브는 단순한 장면 전환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앞선 이미지가 사라지기 전에 다음 이미지가 나타나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한 화면에 잠시 겹친다. 인물과 별이 포개지는 듯한 이미지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밤하늘의 별과 맞닿는다. 사라지는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 위에 흔적을 남기는 과정은 떠나간 사람이 남겨진 사람의 삶에 머무르는 방식과 닮아 있다. 반복되는 몽환적인 음향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의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우주의 광활함을 소리로 상상하게 하듯, 이러한 음향은 눈앞에서 사라졌어도 기억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상매체를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 또한 흥미롭다. 본작은 허구의 세계를 만드는 일과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는 일을 나란히 놓는다. 거창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 못지않게, 특별할 것 없는 표정과 몸짓을 남기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카메라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다만 언젠가는 사라질 순간을 붙잡아서 다른 시간에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지점에서 <우주의 흔적>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영화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 된다.

 

결국 <우주의 흔적>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별을 닮은 이미지와 우주를 연상시키는 음향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지만, 그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기억이다. 별빛이 먼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닿듯, 누군가와 나누었던 순간도 그의 부재 이후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지지만, 서로의 삶에 남긴 흔적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별이 저무는 밤에도, 그 빛은 누군가의 세계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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