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20명이 채 되지 않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국어 수업. 수업의 내용은 ‘호접지몽’에 관한 이야기이다. ‘호접지몽’은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다가 깨어난 뒤,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의문을 던진 데서 유래한 이야기이며 장자의 철학을 대표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물아일체의 깨달음이나 인식의 상대성,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내용 등인 만큼 고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아주 어렵다. 그럼에도 예옥(강경헌)은 이렇게 말한다. “호접지몽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으면 더 어렵다.”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떤 학생은 아예 엎드려 자기도 하며 어떤 학생은 무의미한 낙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옥은, 엎드려 자는 학생을 무시하고, 다른 학생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지 하지 않는지 점검하지 않은 채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고, 교실에 힐 소리를 내고 다니며, 내용보다는 틀에 박힌 문법으로 내용을 이해하라고 하는 그의 태도에서 그가 학생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교사로 보이지 않게끔 한다. 그는 오로지 성적으로만 학생을 대상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자기 방식이 옳다고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담임 교사로서 갖춰야 할 엑셀 작업의 기본인 정렬조차 모르면서도 그것을 가르쳐주려는 후배 교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호접지몽을 가르치는 교실 창문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새는 울타리는 넘나드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까마귀는 그 자유로움에다 서늘함, 때로는 죽음을 상징한다. ‘한단지몽’ 고사에서 노생이 주막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수십 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 겪은 것처럼, 호접지몽의 내용을 학생이 읽는 동안 창 밖의 까마귀를 바라보는 예옥도 아주 짧은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그 꿈속에서 학교 옥상에서 학생들이 추락하는 이상한 죽음이 반복되고, 예옥은 사건의 취재 기자, 탐조 유튜버와 같이 이 비현실적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러면서 취재 기자가 더 교육자처럼 보인 그의 첫 번째 인터뷰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예옥은 교탁 앞에 서서 창문 밖의 새, 까마귀를 바라본다. 이때 예옥의 표정은 영화 초반부와 완전히 다르다. 무엇인가에서 해방된 느낌이 강하다. 영화 중반부에 종종 나온 버드 아이 뷰 즉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게 된 것일까 그래서 수평적 시선인 현실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까. 예옥은 ‘호접지몽’의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그래서 <새>는 예옥의 오조지몽(烏鳥之夢)이다. 예옥이 까마귀가 된 꿈을 꾼 것인가, 까마귀가 예옥이 된 꿈을 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