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모종의 탐정> : 삶들의 조합

By 김도현

 흑백의 화면과 단조로운 배경, 침착한 리듬을 지닌 <모종의 탐정>은 고상한 목소리와 순수한 얼굴을 지닌 배우(이유하)를 등에 업고 아늑한 내면의 방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화면은 어두워 보이지만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배경은 얌전히 대화에 자리를 내어준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전모가 밝혀지는 과거의 사건들은 심상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이나 연민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한 사람의 삶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들’을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해주는 예전에 쓴 소설을 재발간하기를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그녀는 그때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편집자는 그 소설이 해주라는 사람이 아니라 지나간 한 세월일 뿐이라 말한다. 당연히 한 사람의 인생이 책 한 권에 담길 수는 없다. 그건 한 세월의 기록이자 삶의 조각이다. 해주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혼한 남편과 시어머니, 선배, 애인의 친구.... 그들을 만나며 밝혀지는 사건들은 도대체 한 사람이 겪은 일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보통 일이 아니다. 그중 하나라도 경험하면 무너질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해주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덤덤히 진술할 뿐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영화에서 소설로 각색되고, 연극으로 재현되고, 말로 발화된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지 치는 해주의 여정이나 그녀의 인생같이 한 편의 소설이 다른 방식으로 보여지는 셈이다. 이러한 조각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모아지는 이유는 영화가 훌륭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주제로 좁은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그러한 유려함을 증명한다. 종이의 지인은 마지막에 내림에도 굳이 중앙 자리를 차지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카메라는 잠시 차량의 뒤쪽으로 이동해 숨을 고른다. ‘변신’을 좋아하는 두 남자는 앞에 앉아 반응을 공유한다. 차에 설치된 카메라는 조금씩 균형을 움직이며 대화의 중심을 뒤흔든다. 정교하고 감각 있게 설계된 촬영과 편집은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우리에게 여러 개로 나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탐정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듣고 관찰하고 단서를 모은다. 수집된 단서들 사이의 관계가 파악되면, 진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명의 인간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시간과 사건의 집합이다. 우리는 자기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 조각들을 조합하는 데는 서툴다. 해미가 덤덤히 진술한 여러 개의 삶들. 그 삶들은 인생을 정의하는 재료이자 단서다. 우리는 그 단서들을 엮어 공통의 분모를 찾아낸다. 그렇게 인생에 조금 더 다가간다. 영화는 삶을 판단하지 않고 삶들을 조합할 뿐이다. 영화는 판사가 아니라 탐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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